1930년대 패션사 수업: 네오클래시시즘, 초현실주의, 도피주의
1930년대에 옷을 구매하는 여성이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거들을 입으면 몸이 튜브처럼 보일 뿐입니다. 당장 벗으세요.” 1920년대 이후 아랫배를 누르고 허리를 조이는 보정 속옷의 일종이던 거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931년 4월 15일 <보그>는 ‘몸이 먼저, 드레스는 그다음’이라는 기사를 작성한다. 당시 여성들은 드롭 웨이스트 형식의 튜브 드레스가 아니라 보디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기 시작했다. 1920년대 ‘멋쟁이’ 플래퍼들이 몸의 곡선을 가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과 정반대 흐름이 시작된 것.
‘몸이 먼저, 드레스는 그다음’에서 <보그>는 몸을 감싸는 타이트한 디자인의 드레스를 선보인 비오네(Vionnet)가 이런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아르데코 시대가 저물고 ‘네오클래시컬’ 시대가 시작된 것. 그에 맞춰 여성들 역시 ‘신성한’ 존재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1930년대는 불안정한 시기였다.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되며 세계는 전례 없는 불황에 접어들었고,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가 되는 일련의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 예술가들은 이런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을 발현하며, ‘도피주의(Escapism)’라는 사조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진 할로우, 클로데트 콜베르(Claudette Colbert), 조안 크로포드 같은 영화배우는 실크 소재 바이어스컷 드레스를 입고 여신 같은 비현실적인 자태를 뽐냈다.
1930년대는 패션 사진이 탄생한 시대이기도 하다. 1932년 7월 1일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이 촬영한 사진이 최초로 <보그> 커버를 장식하게 된 것. 사진 속 빨간 보디수트를 입은 여성은 그리스·로마 신화의 여신처럼 위엄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1930년대 여성 트렌드
드레이핑의 화신, 비오네
잠시 ‘몸이 먼저, 드레스는 그다음’ 기사로 돌아가보자. 1931년 <보그>는 여성의 몸에 맞도록 조각된 옷이 ‘거부할 수 없는 트렌드’라고 설명한다. 서양 복식 역사상 최초로 여성은 보정 속옷 없이 드레스를 입기 시작했다. 빅토리아 시대부터 이어져온 코르셋과 거들의 압박을 드디어 벗어나게 된 것. 비오네는 원단을 사선으로 재단해 흘러내리는 듯한 드레이핑이 특징인 바이어스컷이라는 기법을 개발한다. 그녀가 만들어낸 드레스는 심플하면서도 아름다웠고, 곡선으로 흐르는 인체 본연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
비오네는 최초로 마네킹에 마이요(Maillot)와 드레스만 입힌 디자이너다. 샤넬, 스키아파렐리, 랑방, 멩보쉐(Mainbocher) 등 당대 최고라 불리던 디자이너들이 모두 그녀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1930년 11월 10일 <보그>는 완벽하게 단순한 ‘비오네 라인’이라는 기사를 발행한다. <보그> 에디터는 “사진으로 그 아름다움을 담아내기는 무척 어렵지만, 그럼에도 비오네 드레스는 패션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녀의 옷은 리듬감과 움직임이 유연하며, 착용자는 20세기 다이애나 여신처럼 보인다”고 썼다.
백리스 실루엣
헴라인이 다시 길어지며(헴라인 지수는 이때도 유효했다), 디자이너들은 ‘드러낼 수 있는’ 다른 신체 부위를 찾게 된다. 이들이 내놓은 해법은 백리스 드레스. 여성들은 처음으로 등을 노출한 채 파티에 참석했다. 그 후 <보그>는 백리스 드레스 밑에 어떤 이너를 입는 것이 적합한지 기사를 쏟아냈고, 속옷 디자이너들 역시 다양한 디자인의 속옷을 선보인다. 하지만 게오르게 호이닝겐 휘네(George Hoyningen-Huene)가 촬영한 리 밀러의 사진 한 장이 공개되며, 이 모든 노력은 의미를 잃게 된다. 그녀가 T 스트랩 형태의 백리스 드레스 밑에 아무것도 입지 않았던 것. 이는 ‘모든 여성은 당당하게 등을 노출할 권리가 있다’는 메시지와 같았다.
팬츠의 유행
1930년대에 접어들며 몇몇 여성은 와이드 팬츠에 도전하기 시작한다. 1936년 6월 15일 <보그>는 이 무시 못할 흐름을 다루는 기사를 작성한다. ‘팬츠는 어떨까? 언제, 어디서 입어야 할까?’라는 제목의 기사가 내린 결론은? 스포츠를 즐길 때나 휴가를 떠날 때는 충분히 팬츠를 입을 수 있다는 것. <보그>의 캡션 라이터였던 토니 프리셀은 팬츠를 입고 러닝을 하거나 낚시하는 여성의 사진을 촬영하며 명성을 얻기도 했다. 집에 있을 때도 멋을 놓치고 싶지 않은 여성을 위한 ‘꾸뛰르 파자마 팬츠’나 해변에 가는 여성을 위한 리넨 와이드 팬츠가 인기를 끌었지만, 1930년대의 팬츠 유행은 딱 여기까지였다.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고급 카페는 팬츠 입은 여성을 용납하지 않았다. 여성용 팬츠를 선보인 대표적인 디자이너로는 마기 루프(Maggy Rouff)와 엘사 스키아파렐리가 있다.
할리우드!
1930년대 할리우드는 영화뿐 아니라 ‘패션 수도’ 기능 역시 겸했다. 이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은 MGM의 코스튬 디자이너, 길버트 에이드리언(Gilbert Adrian). 할리우드의 여러 스튜디오는 당시 주요 여배우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그들이 ‘패션 아이콘’의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왔다. <보그> 에디터 낸시 하딘은 1933년 2월 1일 ‘할리우드, 창조자일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작성한다. 당시 할리우드 패션은 파리 패션계의 모방에 그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존재했기 때문. 해당 기사에서 낸시 하딘은 “할리우드는 완전히 새로운 패션의 흐름을 창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1931년 영화 <마타 하리>에서 그레타 가르보가 입고 있는 각진 어깨의 드레스가 완벽한 예다. 마를렌 디트리히가 <상하이 익스프레스>에서 입은 ‘뱀파이어풍’ 드레스, 그리고 조안 크로포드가 <레티 린턴>에서 입은 러플 슬리브 드레스는 또 어떤가!
낸시 하딘은 특히 <레티 린턴> 속 드레스에 주목했다. 에이드리언이 디자인한 이 드레스는 실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영화를 본 여자아이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디자인의 드레스를 갖고 싶어 했으니까.
레이온, 나일론 그리고 지퍼
‘광란의 시대’라고도 불리던 1920년대가 끝나기 직전 대공황과 함께 인류 역사상 최악의 불황이 시작됐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이런 현실은 패션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당시 패션계에 종사하던 이들은 더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소재를 개발하는 데 집중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1880년대에 발명됐지만, 1930년대에야 비로소 의류 생산에 활용되기 시작한 레이온. 디자이너들은 레이온으로 데이 드레스를 만들고, 실크 대신 나일론(당시에는 인조 실크 혹은 아트 실크라고 불렀다)으로 스타킹을 만들기 시작했다.
<보그> 역시 이런 흐름에 동참했다. 레이온 소재의 옷을 다룬 기사 ‘저소득층을 위한 럭셔리’와 가장 실용적인 소재로 거듭난 레이온에 대한 특집 기사 ‘레이온의 집권’을 발행했다. 지퍼가 달린 옷이 처음 등장한 것 역시 1930년대다. 스키아파렐리는 지퍼 달린 옷이 등장한 1935 F/W 컬렉션을 선보이며, 이를 ‘옷을 잠그는 가장 빠르고 편안한 방법’이라 소개했다.
초현실적으로 변한 패션
네오클래시시즘과 함께 1930년대 패션계를 양분하던 트렌드는 초현실주의였다. 호안 미로, 막스 에른스트 같은 화가가 주도하던 예술 사조인 초현실주의가 패션계에도 손을 뻗치기 시작한 것. <보그> 커버를 위한 일러스트레이션을 여러 번 그리기도 했던 살바도르 달리와 스키아파렐리의 만남은 초현실주의가 주요 트렌드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살바도르 달리는 1938년 스키아파렐리의 ‘눈물방울 드레스’를 디자인하며 패션과 예술이 완벽하게 어울리는 한 쌍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월리스 심슨이 입은 모습을 세실 비튼이 촬영하며 대중적으로 크게 주목받은 스키아파렐리의 ‘랍스터 드레스’에 가재를 그린 인물 역시 당연히 살바도르 달리. 당대를 대표하던 또 다른 초현실주의 예술가로는 크리스티앙 베라르(Christian Bérard), 장 콕토가 있다.
패션 사진, 예술이 되다
1930년대는 패션과 디자인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주된 방법이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사진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보그>에 최초로 사진이 실린 것은 약 20년 전이었다. 1913년 콘데 나스트의 창립자 콘데 몽트로즈 나스트(Condé Montrose Nast)가 아돌프 드 메이어(Adolph de Meyer) 남작을 ‘하우스 사진가’로 고용한 것. 그가 촬영한 모델과 상류층의 포트레이트는 사진이라는 매개체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사진은 단순한 일러스트레이션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1930년대 패션의 특징인 화려함과 드레이프 디테일을 완벽하게 담아냈다. 1932년 7월 1일 에드워드 스타이켄의 사진이 최초로 <보그> 커버를 장식한다. 1930년대 말에는 대부분의 잡지가 일러스트레이션이 아니라 사진으로 된 커버를 선보이기에 이른다. 호르스트 P. 호르스트, 만 레이, 세실 비튼, 토니 프리셀(Toni Frissell) 모두 패션 사진이라는 예술을 개척한 이들이다.
#1930년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마들렌 비오네, 엘사 스키아파렐리, 코코 샤넬, 에드워드 몰리뉴(Edward Molyneux), 멩보쉐, 잔느 랑방, 노먼 하트넬(Norman Hartnell), 발렌티나, 자크 하임(Jacques Heim), 마르셀 로샤스(Marcel Rochas), 알릭스(마담 그레), 마기 루프, 뤼시앵 를롱(Lucien Lelong), 로베르 피게(Robert Piguet), 장 파투 그리고 아우구스타 베르나르(Augusta Bernard).
#1930년대 남성 트렌드
남성 패션계에도 아이콘, 뮤즈라 부를 만한 인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콧수염이 상징과도 같았던, 영화배우 클라크 게이블. 1934년 영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에서 스리피스 수트를 입고 있던 그의 모습은 모든 남성의 ‘워너비’였다. 새빌 로는 여전히 남성복 트렌드의 중심에 있었고, 캐리 그랜트는 ‘브리티시 테일러링’의 멋을 더 널리 알렸다. 1920년대와 달리 한층 슬림한 핏이 유행했고, 여성복처럼 허리를 강조하는 수트 재킷이 늘었다. ‘원조 스타일 아이콘’ 윈저 공의 영향력 역시 변함없었다.
#1930년대 문화적 배경
1929년 월스트리트가 붕괴됐다. 이후의 세계 경제 및 정세 역시 ‘희망’과는 거리가 멀었다. 1933년 금주법이 폐지되며 알코올이라는 도피처가 생기긴 했지만, 사람들은 현실을 잊기 위해 영화가 상영되는 대형 스크린 앞으로 향했다. 당시 아역 배우였던 셜리 템플, 그리고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의 안무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니나 매 맥키니는 스크린에 등장한 최초의 흑인 스타 중 한 명이다. 1936년 12월 10일 에드워드 8세는 영국 왕위를 포기하고 사랑을 택한다. 퇴위한 후 ‘윈저 공작’이라는 작위를 받은 그와 부인 월리스 심슨은 스타일 아이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