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도산대로에서 생루이 크리스털을 만날 수 있다
현대 주택의 낮아진 층고에 맞춰 샹들리에는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넓어지고 있다. 430여 년 역사의 생루이가 도산 부티크를 열며 전통과 혁신의 조화를 본격적으로 보여준다.
9월 24일, 비 내리는 도산대로. 메종 에르메스의 발랄한 윈도 디스플레이를 지나자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빗방울을 반사하는 생루이(Saint-Louis) 도산 부티크가 나타났다. 에르메스 그룹 소속의 프랑스 크리스털 브랜드 생루이가 한국 최초로 연 플래그십 스토어다.
1586년 프랑스 보주산맥(Massif des Vosges) 북부의 그림 같은 숲속에 들어선 유리 공방은 1767년 루이 15세에게 ‘생루이 왕립 유리 공방(Verrerie Royale de Saint-Louis)’이라는 칭호를 부여받고, 14년 후 크리스털의 특별한 성분 비율과 제조 비법을 개발하면서 ‘생루이 왕립 크리스털 공방(Royale Cristallerie of Saint-Louis)’이 되었다.
430여 년이 지난 지금, 2층 규모의 생루이 도산 부티크에 들어서니 조명 48개로 이루어진 샹들리에가 두 눈을 압도한다. 그간 한국에서 테이블웨어 등 소품 위주로 만났지만, 앞으로는 샹들리에를 비롯해 다양한 컬렉션을 실물로 보고 구입할 수 있다. 연말과 새해 선물이 고민인 요즘 눈에 띄는 아이템은 동물을 섬세하게 세공한 문진, 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폴리아 포터블 램프(Folia Portable Lamp). 불을 켜자 정교한 커팅에서 나오는 빛과 그림자가 테이블에 문양을 그려냈다. 1층은 판매를 위한 공간, 2층은 커스터마이징을 구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VR 영상을 통해 생루이 공방도 볼 수 있는데, 프랑스 최고 장인(Meilleurs Ouvriers de France)으로 인정받은 유리 부는 직공(Glass Blower)과 세공사(Cutter)의 크리스털 제작 과정이 펼쳐진다.
생루이의 최고경영자 제롬 드 라베르뇰(Jérôme de Lavergnolle)은 직접 입으로 불고 손으로 커팅하고 고로에 녹이는 노하우가 202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됐다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이렇게 숨을 불어넣는 작업의 기원은 1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을 아세요?”
생루이 도산 부티크가 도산공원 일대에 자리 잡은 이유는 메종 에르메스 가까이 있기 위해서인가?
그렇진 않다. 서울에 에르메스 플래그십 스토어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도산공원에 반했다. 당시 압구정동이 트렌디하고 뜨거운 분위기였다면 이곳은 주택 위주여서 한적하면서도 우아했다. 지금은 갤러리와 브랜드 숍이 많지만, 여전히 산책하기 좋은 아름다운 지역이다.
생루이 도산 부티크를 관통하는 컨셉과 철학은 무엇인가?
세계 어느 부티크든 르나 뒤마 건축 사무소(RDAI)와 함께하며 ‘보주 공방을 어떻게 하면 매장 안으로 들여올까’ 고민한다. 곳곳에 공방이 연상되는 디테일이 반영되어 있다. 바닥은 보주산맥의 돌이, 책장은 그곳의 오크나무가 떠오른다. 예전엔 고로에 불을 지피기 위해 나무꾼들이 숲에서 나무를 베어 왔다. 공간의 회색은 고로를, 가구 모서리의 커팅은 생루이의 ‘커팅 기술’을 의미한다.
서울에서 시도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나?
생루이 제품의 쓰임을 보여주고 싶다. 예를 들어 취향에 맞는 화병을 고를 수 있도록 플로리스트를 초대해 여러 컬렉션에 꽃꽂이를 해보면 어떨까 싶다. 코냑이나 와인 시음회도 좋겠다. 어떤 공정으로 제품이 완성됐는지도 알리고 싶다. 2층에서 생루이만의 노하우와 제작 방식을 보여주는 전시를 여는 이유다.
앞서 기자 간담회에서 “생루이의 정체성은 조명”이라고 말했다.
생루이의 빛은 샹들리에, 포터블 램프 등에 다양하게 존재하고 변화한다. 예를 들어 지금 도산 부티크에 설치된 자수정색과 회색의 샹들리에는 전통의 로얄 컬렉션(Royal Collection)이지만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넓게 퍼져 있다. 상단에서 하단까지 80cm 정도여서 층고가 높지 않은 아파트에도 설치하는 데 무리가 없다. 한편 “15m 층고에 어울리는 매우 큰 샹들리에를 원한다”는 고객도 있었다. 샹들리에는 보통 조명 8~48개로 이루어지는데, 생루이는 그 고객을 위해 220개가 들어간 9m 길이의 제품을 만들었다. 해체해서 박스 59개에 포장한 뒤 11m의 견인선에 실어 보냈다. 어떤 제품도 주문 제작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장인이 숨결과 손으로 만들지만, 가장 현대적인 기술이 도입된 제품은?
몇 년 전 네덜란드 디자이너이자 에인트호번 디자인 스쿨 교수 키키 판에이크(Kiki van Eijk)와 협업해 조명을 만들었다. 첫 미팅 때 키키가 이미 디자인 스케치를 해왔다. 나는 보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생루이의 DNA를 모른 채 나온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를 설득해 생루이 공방을 사흘간 탐험하도록 했다. 정말 별별 곳을 다 갔다. 근처 동굴에서 옛날에 크리스털을 주조할 때 쓰는 몰드를 발견했다. 지하 공동묘지인 카타콤에서 발견될 법한 모양이었다. 키키는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양쪽으로 열수록 조도가 높아지는 램프를 선보였다. 오래전부터 써온 몰드에서 영향을 받은 LED 램프라니, 전통과 혁신의 조화를 보여주는 제품이다.
생루이에서 가장 좋아하는 제품으로 폴리아 포터블 램프를 꼽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주 선물한 제품은?
버블스(Bubbles) 잔을 레드, 스카이 블루 등 색깔별로 선물하곤 한다. 조르르 진열하면 아주 예쁘다.
생루이에는 열 가지 컬러가 있다. 이 컬러들을 선택한 이유는?
모두가 선호하면서도 안정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색이어야 했다. 레드가 마음에 들어 구입했는데, 다음 제품이 주황색에 가깝다면 어떻겠는가.
프랑스 북동부에 자리한 생루이레비슈(Saint-Louis-lès-Bitche) 마을의 크리스털 공방 안에 있는 크리스털 박물관 라 그랑 플라스(La Grand Place)에서는 크리스털 역사가 담긴 제품 2,000여 점을 상설 전시하고, 현대미술 기획전도 열고 있다. 전시 기획의 기준은?
상설전 외에 특별전은 에르메스 재단에서 기획한다. 에르메스의 현대미술 기획전은 전 세계 네 곳에서 진행된다. 벨기에 브뤼셀, 일본 도쿄와 대한민국 서울, 마지막이 생루이다. 공방 근처에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자리하는데, 덕분에 자연스럽게 아티스트와 아티장이 교류하며 독특한 작품이 나오기도 한다.
장인, 디자이너, 기술자가 협력한 유리 전시에선 폐유리를 재활용한 작품도 있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환경문제를 생루이는 어떻게 풀고 있는가?
제품에 이물질이 있을 때 그냥 버리지 않고 깨고 갈아서 다시 고로에 넣는다. 크리스털 커팅 작업 중에 날리는 먼지에는 안타깝게도 납이 들어 있는데, 이를 자연으로 내보낼 수 없기에 정수 필터 시스템을 갖췄다. 혁신적인 기술로 에비앙과 생루이가 보유하고 있다. 또한 고로의 온도를 1,450℃로 유지하려면 엄청난 가스가 들고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이를 줄이기 위해 지난해에 100% 전기로 돌아가는 고로를 도입했다. 물론 전기도 에너지를 써야 하지만, 전보다 나은 방법이라 믿는다.
환경 외에 집중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첫째가 성평등이다. 우리는 남녀의 임금 차이가 없다. 또 프랑스는 전 직원의 6%를 장애를 가진 이들로 고용해야 하는데, 생루이는 그 비율이 14%에 달한다. 다양성과 평등, 존중은 우리가 영원히 지켜야 할 가치다. V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