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YP 여성의 질이라는 가장 독창적이고 특별한 생태계

MICROBIOME

지난해 영국의 지속 가능한 탐폰 브랜드, 데이(Daye)가 최신 발명품을 위해 약 158억원의 기금을 조성했다는 기사가 대서특필됐다. 정체는 ‘질 마이크로바이옴’ 테스트 키트로도 활용할 수 있는 탐폰이다. 혁신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뉴스는 ‘대체 질 마이크로바이옴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테스트하고 치료하는 것은 둘째 치고, 그것까지 우리가 신경 써야 하나?’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수년 동안 마이크로바이옴과 관련한 스포트라이트(SNS 해시태그로는 #guttok)는 ‘장’이 독차지했다. 특별한 환경에서 공존하는 박테리아, 균류, 바이러스를 비롯한 유기체인 이 마이크로바이옴은 위장뿐 아니라 피부, 입, 질과 같은 점막 기관에 서식한다. “미생물이 세포 총수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어요. 정말 놀라운 일이죠. 우리 인체에 있는 38조 개가 넘는 세포가 ‘인간 세포’가 아니라는 점이요.”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기관 시드 헬스(Seed Health)의 공동 창립자 아라 카츠(Ara Katz)가 말했다. “수백 년 동안 우리는 의학과 과학 분야에서 중요한 것을 놓친 채 인체를 연구했고, 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질에도 장과 같은 마이크로바이옴이 있지만, 이 부위의 환경은 근본적으로 다르게 진화되어왔다. 카츠는 그것을 우림과 사막, 늪 혹은 호수처럼 자연 생태계의 차이점에 빗대 설명한다. 이 자연 생태계 모두 그곳에서 두드러진 종의 서식지가 된다. 인체도 마찬가지다. “장 마이크로바이옴의 건강지표를 보면, 다양할 뿐 아니라 높은 ‘바이오매스(생물량)’를 지니길 바라죠.” 카츠가 말했다. 하지만 최적의 질 마이크로바이옴은 그 반대 특성을 지닌다. “질은 박테리아의 다양성이 적도록 설계돼 있고, 오로지 유산균만 두드러지는 놀랍도록 특별하고 독특한 마이크로바이옴입니다.” 쉽게 말해 좋은 박테리아가 질을 장악하는 것이다. 산부인과 전문의이자 의학박사 앨리사 드웩(Alyssa Dweck)에 따르면 그 박테리아가 젖산의 생성을 촉진하고 질 내 pH를 정상적인 산성 범위(3.8~4.5)로 유지해준다.

“질 마이크로바이옴을 균형 있게 유지하면, 질의 구조와 기능을 보존하고 질병을 예방해줍니다.” 뉴욕의 피부과 전문의 매크린 알렉세이즈(Macrene Alexiades)가 말했다. 우리의 비뇨생식기, 질, 자궁 건강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균형이 깨지는 것(혹은 생물학적 균형이 무너지는 것)은 여러 병리학적 이상과 질병을 초래할 수 있다. “박테리아의 특정 양상은 조산, 성병, HPV와 같은 감염 지속성 등의 위험성을 높이는 것과 연관성을 띱니다.” 의학박사 캐롤라인 미첼(Caroline Mitchell)은 말한다. 그녀는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산과, 부인과 및 생식 생물학과 부교수이자 보스턴 종합병원 외음부 질환 프로그램 책임자로 재직 중이다.

질 마이크로바이옴의 일반적이고 지속적인 불균형은 박테리아성 질염을 초래한다. 심각성이 높지 않은 질병에 속하지만, 삶의 질과 성 건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증상(가려움, 작열감, 불쾌한 냄새 또는 분비물 등)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DNA 분석 기술로 측정된 마이크로바이옴의 변화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특성을 띠는 박테리아성 질염은 가장 많은 연구 대상의 질환이다. 카츠는 인간의 질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동물 실험 모델이 없다는 것이 문제점이라 표현한다. “여성의 질은 특정한 유산균 양상을 가지는 유일한 종입니다.” 최근에는 질 마이크로바이옴과 조산 사이의 상관관계를 알아내기 위해 대대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 “질 마이크로바이옴의 건강과 정자에 대한 수용성, 정자가 일정 기간 동안 잘 자라는 데 필요한 건강한 환경이 되어주는 것이 중요하며, 우리는 그것이 pH와 관련돼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카츠는 첨언했다.

많은 것이 질 마이크로바이옴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드웩은 “항생제, 호르몬 변화, 모든 성행위, 자궁 내 삽입 피임 기구, 피임용 세정제, 윤활제, 보디 워시, 위생용품과 질 내 출혈 등 많은 교란 요인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스트레스는 말할 것도 없고, 당뇨병 같은 질병, 옷 선택도 해당된다. 앞서 언급한 호르몬 변화는 사춘기, 월경, 경구 피임, 임신, 폐경기를 의미할 수 있다. 그리고 유산균이 임신 중에는 증가하고, 폐경기에는 감소하는 경우가 잦다.

“폐경기에 pH 수치가 올라가면서 비정상적인 알칼리성 환경으로 바뀌면 유산균 개체수가 감소합니다.” 피부과 전문의 알렉세이즈는 짚는다. 그녀는 폐경 전 질 pH를 회복하기 위해 레이저를 활용해 성공적인 결과를 얻어내는 것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주요 마이크로바이옴 변화와 맞물려, 질 내벽이 글리코겐 수치 저하로 위축되면서 눈물 모양 분비물과 병원균 감염이 발생합니다.” 호르몬으로 생긴 변화의 상당수는 질 마이크로바이옴 구성에 주요 역할을 하는 에스트로겐 때문일 수 있다. 에스트로겐이 감소할수록 유산균도 감소하고, pH 수치는 올라가는 것이다. “사춘기, 임신, 젖 분비, 폐경기는 에스트로겐에 노출되거나 에스트로겐이 부족하기 때문에 마이크로바이옴에 영향을 미칩니다.” 드웩이 덧붙였다.

특정 식단과 생활 습관이 질 마이크로바이옴의 균형 유지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지중해성 저탄수화물 식단, 운동하는 동안 천연섬유 의류 착용, 성관계 파트너가 여럿인 경우 콘돔을 사용하는 것과 염료, 향료가 함유된 화장품과 위생 제품 사용의 제한 등이 이에 포함된다. 특히 질 세정과 향을 위해 사용하는 위생 제품의 남용이 문제가 된다. 염증에 처방되는 항생제 또한 그렇다. “적극적으로 항생제를 복용했든, 아니면 부지불식간에 식품을 통해 몸으로 유입되든 간에, 우리는 항생제에 어쨌든 많이 노출된 세상을 살고 있죠.” 카츠는 “수많은 질병 치료에 주로 항생제가 활용됩니다. 그렇다 보니 본질적으로 생태계를 완전히 망가뜨리죠.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제자리로 돌려놓지 않습니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논의가 질까지 확대되며 전 세계에선 동시다발적으로 펨테크 붐이 일어나고 있다. 미생물 환경을 테스트하고, 섬세한 균형을 유지해주는 브랜드가 속속 출시된다. 주노 바이오(Juno Bio), 이비(Evvy), 한국의 체킷(cheKIT) 등은 개인 건강에 대한 데이터 기반의 통찰력을 제공하기 위해 ‘질 마이크로바이옴 테스트 키트’를 제공한다. 질 전용 프로바이오틱스의 선택지 또한 늘고 있다. 보나파이드(Bonafide)의 ‘클레어비(Clairvee)’는 균형 잡힌 질 마이크로바이옴을 유지하도록 임상 시험을 거친 프로바이오틱스로, 실제 만성 질염 환자에게서 효과를 보았다. 수많은 브랜드가 쏟아지지만, 미첼에 따르면 ‘락토바실러스 크리스파투스’라 불리는 질 균주를 포함해야만 한다. “대부분 시판용 프로바이오틱스, 질 건강 전용으로 알려진 것들조차 질보다는 장에서 발견되는 유산균 종을 지니고 있습니다”라고 지적한다. FDA가 요구하는 의약품에 대한 까다로운 기준을 만족시키는 연구는 부족하고, 식이 보충제로 구분되는 프로바이오틱스 특성상 낮은 품질 기준만 충족해도 된다. “이 모든 것은 확실한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을 만나려면 갈 길이 아직 멀다는 것을 암시하죠.”

하지만 전망은 밝다. 2020년 메릴랜드 대학의 게놈 과학 연구소는 질 유전자를 기록한 일종의 카탈로그인 ‘VIRGO’를 개발했다. 질 미생물과 부인과 질환의 치료법 개발에서 공공 자원으로 구상되고 있다. 이 연구가 질에 대한 인식과 이야기, 치료법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기를 희망해본다. 카츠는 기대감 섞인 어투로 이야기한다. “이 연구는 여성이 그들의 신체에 엄청난 수치심을 갖도록 만든 끔찍한 인식을 잠재우는 방향으로 질에 대해 알아갈 수 있게 해줍니다. 이런 발견을 통해 질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갈 거예요.” (V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