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형태가 하이 주얼리가 된다면

아이슬란드에서 발견한 가장 아름다운 물의 형태.

“까르뜨 블랑슈(Carte Blanche)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와 기회에 관한 것입니다.” 라탄을 엮어 만든 목걸이에 큼직한 다이아몬드를 더하고, 진귀한 브로치에 실제 나비 날개를 사용하며, 후디 스트링은 귀고리로 변형해 착용할 수 있다. 지금까지 클레어 슈완(Claire Choisne)이 부쉐론 크레이에티브 디렉터로서 선보인 혁신적인 디자인이다. 과연 그녀가 더 증명할 것이 남았을까. 2024 까르뜨 블랑슈 컬렉션 주제로 색이나 모양이 전혀 없는 요소가 등장했다. 바로 ‘물’이다. 물이라고 하면 오팔이나 진주, 자개 등을 활용해 푸른 바다를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쉬운 길은 클레어의 방식이 아니다. 그녀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물의 원시적인 아름다움이 깃든 아이슬란드로 향했다.

아이슬란드는 낯선 나라다. 솔직히 말하면 이 북유럽의 작은 섬나라에 대해 아는 거라곤 빙하와 오로라, 전설적인 뮤지션 비요크의 고향이라는 사실이 전부다. 개인적으로는 뉴질랜드에서 촬영한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원작자 J.R.R 톨킨(J.R.R. Tolkien)이 소설을 쓸 당시 영감을 받은 곳이라는 것 정도. 지구의 태초 혹은 최후의 모습과 닮았을 것이라는 아이슬란드의 독특하고 이색적인 풍경은 그저 판타지 영화의 배경으로 쓰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상상력을 자극하고 한계를 시험하기에 이보다 훌륭한 장소도 없기 때문이다. 클레어 슈완이 이곳으로 떠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녀가 아는 것은 다 야생에서 배웠다.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자연이 그녀를 기르고 가르치고 보호해주었다.” 델리아 오언스(Delia Owens)의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 나오는 글귀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물에 대한 추억을 기념하는 ‘오어 블루(Or Bleu, 영어로는 Blue Gold)’ 컬렉션은 시작부터 남달랐다. 여느 때와 달리 파트너가 있었기 때문. 북유럽의 자연을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독일 사진가 얀 에릭 와이더(Jan Erik Waider)가 클레어에게 영감을 준 풍경을 담아내면, 그 사진을 바탕으로 디자인 작업에 돌입하는 것이 순서였다. 자연이 내주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 주얼리로 구현하기 위한 아이디어다. 쏟아지는 폭포수, 넘실대는 파도, 검은 모래 해변 위 얼음 조각 등 아이슬란드의 물은 날것 그대로의 거칠고 강력한 모습을 드러냈다. 결국 이를 가장 사실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기술과 재료를 확보하는 것이 이번 까르뜨 블랑슈 컬렉션의 핵심이었다. 예를 들어 ‘오 당크르(Eau d’ Encre)’는 아이슬란드의 짙은 바다를 표현하기 위해 검은색 화산암인 옵시디언에 파도를 시뮬레이션한 3D 파일을 기반으로 물의 움직임을 조각했고, 검은 모래 위로 부서지는 파도 거품을 형상화한 ‘사블르 누아(Sable Noir)’에는 실제 검은 모래를 사용해 소재의 텍스처를 고스란히 재현했다. 그중에서도 물방울이 떨어져 생기는 수면의 잔물결을 록 크리스털과 다이아몬드로 생동감 있게 표현한 ‘옹드(Ondes)’는 목걸이 제작에만 무려 5,050시간이 걸렸다. 1910년 티아라를 연상케 하는 ‘바그(Vague)’, 1901년 제작된 빗에 경의를 표하는 ‘플로(Flots)’ 브로치처럼 아카이브를 재해석한 작품뿐 아니라 1,816개의 다이아몬드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카스카드(Cascade)’ 주얼리와 같이 메종의 멀티웨어 전통을 따른 피스도 있다. 148cm에 달하는 목걸이는 부쉐론 아틀리에에서 제작한 가장 긴 길이의 작품으로, 더 짧은 목걸이와 펜던트 귀고리로 변형 가능하다. ‘오어 블루’ 컬렉션이 거의 흑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도 재미있다. “자연의 힘을 나타내는 색상은 대부분 검정과 하양이었습니다. 그래서 오어 블루라고 부르지만 파란색은 없죠. 검은색과 흰색, 투명한 것만 사용했어요.” 이렇듯 물의 다채로운 모습을 가장 찬란하게 그려낸 하이 주얼리 작품은 총 26가지. 메종은 물의 색감이나 텍스처, 움직임, 반사, 투명함을 생생하게 표현하며 다시 한번 독창성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보그> 8월호에서는 24명의 편집부 팀원에게 ‘한 번쯤 직접 보고 싶은 것’에 대해 물었다. ‘아이슬란드의 오로라’라는 답변이 꽤 많았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본 오로라의 신비로운 춤사위에 눈길은 갔지만, 꼭 가서 봐야겠다는 생각까진 해본 적 없다. 그런데 ‘오어 블루’ 컬렉션을 위해 얀 에릭 와이더가 촬영한 풍경 사진과 이를 고스란히 구현한 주얼리를 보면서 문득 아이슬란드가 궁금해졌다. 검은 모래 위로 부서지는 파도, 푸른 빙하와 얼음 동굴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아름다움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섬은 어디 다른 곳에 가는 길에 훌쩍 들르듯 방문할 수 없다. 작정하고 그 섬을 찾아가든지, 아니면 영영 찾지 않든지. 둘 중 하나다. 중간은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여행 에세이에 남긴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부쉐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클레어 슈완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그녀는 아이슬란드에서 2024 까르뜨 블랑슈의 결정적 단서를 찾았다.

당신은 그동안 미지의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을 선보이곤 했다.

나는 물소리로 가득한 프랑스 남부의 대서양 연안에서 자랐다. 2024 까르뜨 블랑슈 ‘오어 블루’ 컬렉션의 주제로 물을 선택한 이유는 물이 우리 삶의 필수 자원이기 때문이다. 그 소중함을 컬렉션에 담아내고 싶었다. 나에게 물은 강렬하고 역동적이며 자연의 힘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존재다. 지형을 변화시킬 정도로 강력한 물의 움직임을 직접 보기 위해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떠났다. 아이슬란드의 물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폭포수, 빙하, 강한 파도 그리고 얼음 동굴에서 물의 엄청난 힘을 느낄 수 있었고, 이번 컬렉션의 영감이 되었다.

‘오어 블루’의 시작이 궁금하다.

‘오어 블루’ 컬렉션을 준비하기 시작한 건 2022년 아이슬란드 여행을 다녀온 이후였다. 컬렉션을 완성하기까지는 2년이 걸렸다. 부쉐론의 창조적인 작업은 늘 꿈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디자인 스튜디오의 창의력과 R&D 부서의 전문 지식, 하이 주얼리 워크숍의 노하우를 결합한다.

‘오어 블루’ 컬렉션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인 제품은 무엇인가.

총 5,050시간에 걸쳐 완성한 ‘옹드’ 네크리스다. 수면에 나타나는 유기적인 파동을 담아내기 위해 3D 소프트웨어를 사용했고, 이를 바탕으로 네크리스와 2개의 링을 완성했다. 파동을 재현하기 위한 재료로 록 크리스털을 선택했고, 이를 섬세하게 조각한 후 광택을 더했다. ‘옹드’ 네크리스에는 금속을 최소한으로 사용해 제품이 피부와 같이 느껴지도록 디자인했다. 록 크리스털을 조각하는 것뿐 아니라 네크리스가 몸의 굴곡을 편안하게 따를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큰 도전이었다. 투명함 또한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었기에 록 크리스털 아래 4,542개의 라운드 다이아몬드를 보이지 않게 세팅했다.

당신은 그동안 부쉐론의 아카이브를 영민하게 활용해왔다.

메종의 유산과 창의력의 균형은 매우 중요하다. ‘오어 블루’ 컬렉션의 ‘바그’ 이어링은 1910년 아카이브의 티아라에서 영감을 받았다. 호쿠사이(Hokusai)의 작품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The Great Wave off Kanagawa)’를 모티브로 한 티아라를 이어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플로’ 브로치는 1901년에 제작한 머리빗에서 힌트를 얻었다. 매년 1월에는 ‘이스뚜아 드 스틸(Histoire de Style)’ 컬렉션을 공개하고 있다. 이 컬렉션을 통해 메종의 아카이브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창립자 프레데릭 부쉐론(Frédéric Boucheron)의 헤리티지에 경의를 표한다.

‘오어 블루’는 물과 관련된 14개 테마로 구성된다.

매우 본능적이었다. 아이슬란드에 방문했을 때 그곳 풍경으로부터 받은 깊은 감동으로 이 컬렉션을 기획했다. 눈앞에 있는 풍경을 바라볼 때마다 곧바로 그 풍경을 담아낸 하이 주얼리 작품이 떠올랐다. 쏟아지는 폭포수는 다이아몬드 네크리스가 되었고 넘실대는 파도는 숄더 주얼리가, 빙하의 중심부에서 흐르는 물은 록 크리스털 소재의 브레이슬릿이 되었다. 결국 자연의 순수한 상태를 포착한 26가지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오어 블루’ 컬렉션을 통해 물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유동적인 물의 특성을 주얼리로 구현하는 과정이 쉽진 않았을 것 같다.

아이슬란드의 풍경을 가능한 한 그대로 재현하고, 물의 색감과 질감, 투명한 성질, 빛 반사를 표현하는 것이 가장 큰 도전 과제였다. ‘오 비브’ 브로치는 물의 움직임을 사실적으로 나타낸 주얼리다. 신기술과 하이 주얼리 제작 노하우를 결합해 모든 디테일이 완벽한 대칭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3D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으로 부서지는 파도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후 그 형태를 디자인에 고스란히 담아 알루미늄 블록으로 조각해 완성했다. 이 작업에는 1,000시간 정도 공을 들였다.

‘오어 블루’ 컬렉션에 활용한 소재가 궁금하다.

물의 색감을 표현하기 위해 다이아몬드와 록 크리스털, 푸른빛의 유색석을 사용했다. 물 외에 아이슬란드의 여러 풍경에서도 영감을 받았는데, 검은 모래사장에 파도가 부딪히면서 만들어낸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는 ‘사블르 누아’ 세트로 해석됐다. 모래와 파도의 대조적인 컬러와 질감을 재현하기 위해 아이슬란드의 검은 모래를 골드 및 다이아몬드와 조합했다.

기술적으로 집요하게 파고든 것이 있다면.

‘컬렉션 구현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를 토대로 기술을 선택했다. 이번 컬렉션은 극도로 사실적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3D 시뮬레이션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 기술을 통해 ‘오 비브’ 브로치와 ‘옹드’ 네크리스, ‘오 당크르’ 세트에 물의 다양한 모습을 실감 나게 연출할 수 있었다. ‘사블르 누아’ 세트에는 검은 모래를 압착하기 위해 3D 프린팅 기술을 사용했다. 모래 입자가 달라붙어 원하는 형태가 완성될 때까지 폴리머 바인더를 아주 얇은 층으로 정밀하게 분사했다. 3D 프린팅 기술은 주로 자동차 제조와 항공우주산업에서 사용된다. 이 기술을 활용함으로써 모래의 질감이 잘 드러나면서도 매우 내구성 있는 재료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처럼 혁신에는 한계가 없다.

하나의 주얼리를 이어링, 브로치, 네크리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멀티웨어 옵션’은 부쉐론 하이 주얼리의 핵심이다.

하나의 제품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해 착용할 수 있는 ‘멀티웨어 옵션’을 무척 좋아한다. 나는 주얼리가 주얼리 박스에 갇혀 있지 않고 생동하길 원한다. ‘오어 블루’ 컬렉션 중 4개 제품은 멀티웨어 옵션으로 제작되었다. ‘카스카드’ 네크리스는 다섯 가지 각기 다른 길이의 네크리스와 이어링 한 쌍으로 구성되어 총 여섯 가지 방식으로 착용할 수 있다. ‘바그’ 이어링은 브로치로도 활용할 수 있고, ‘크리스토(Cristaux)’ 네크리스의 중앙 다이아몬드는 링으로 변형된다. ‘지브르’ 헤어 주얼리는 브로치로 응용할 수 있다. 부쉐론은 강요하지 않고 제안한다. 스타일은 당신이 선택하는 거니까!

성별의 경계를 뛰어넘는 디자인 역시 부쉐론의 특징이다.

우리는 특정 성별을 위한 컬렉션과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 개개인의 인격을 존중하며, 모든 제품은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착용할 수 있다.

‘오어 블루’ 컬렉션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귀중함. 물은 우리 모두의 삶에 필수적이기에 무엇보다 소중하다. 우리는 모래, 라탄, 그을린 나무 같은 자연 재료를 골드 및 다이아몬드와 결합하며 귀중함의 의미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자연은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이며, 부쉐론이 행하는 창의적 활동의 핵심이다.

‘오어 블루’ 컬렉션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감정을 느끼는 것. 나는 작품이 계속 한계를 넘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오어 블루’ 컬렉션에는 물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담았고, 사람들이 이 컬렉션을 통해 풍성한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오래 기억하길 바란다.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