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에는 단연 ‘이 컬러’가 눈에 띌 겁니다

일렉트릭 퍼플이 제 옷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적은 거의 없습니다. ‘퍼플 쇼츠 하나 있긴 하지’ 정도의 인연이었달까요. 솔직히 제 옷장보다는 비틀스의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 커버에나 어울릴 법한 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퍼플은 왕실과 영성을 상징했던 컬러여서 그런지, 유독 강렬하고 화려한 이미지가 강합니다. 일상과 거리가 있어 보이죠. 하지만 2025년 가을/겨울 런웨이에 다시 퍼플 컬러가 넘실거렸습니다. 이전 시즌에 라벤더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톤 위주였다면, 이번 시즌에는 더 짙고 풍부해졌죠. 디자이너들은 퍼플을 ‘더 광범위하고 뚜렷한 럭셔리’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택했습니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요.

특히 구찌의 2025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는 하우스의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감성이 드러났는데요.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소환했던 1960년대 실루엣, 사바토 데 사르노의 실크 슬립 드레스, 톰 포드 시절이 떠오르는 글램한 디테일까지 모두 담겼죠. 그중 가장 시선을 끈 건 역시 퍼플이었습니다. 피코트, 시어 드레스, 셋업, 심지어 힐과 스타킹까지 퍼플 컬러로 등장했죠.

미우미우 런웨이에서는 퍼플 컬러의 고고 부츠가 등장했고, 맥퀸의 숀 맥기르는 오스카 와일드에게서 영감받아 고딕한 퍼플 러플을 더했습니다. 해리스 리드가 이끄는 니나 리치는 1970년대 클럽에서 밤을 지새우는 여성들을 모티브로 관능적인 인조 퍼, 슬립, 각진 벨벳 블레이저 등을 선보였고요.

콜린 앨런은 “호불호 갈릴 컬러”라고 표현한 퍼플을 사용해 여성의 몸과 정신 그 자체를 기념했습니다. 안나 수이는 1930년대 스크루볼 코미디(Screwball Comedy) 속 여주인공을 상상하며 형광 디테일을 섞은 보라색 페어아일 니트와 셋업을 선보였죠.

패션을 좋아하는 티모시 샬라메가 이를 빠르게 눈치챈 걸까요? 보라색 셔츠를 입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습니다. 메릴 스트립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촬영장에서 드리스 반 노튼을 입은 채 미란다로 완벽하게 변신했고요.

셀럽들의 옷장까지 물들이고 있는 걸 보면, 이번 가을엔 일렉트릭 퍼플의 존재감을 무시하긴 어려울 듯합니다. 토리 버치와 보디는 레트로하게, 시몬 로샤는 심플하게, 발렌티노는 퇴폐적으로 퍼플을 표현했거든요. 어떤 스타일을 선호하든 감싸 안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거죠.

퍼플 컬러에 호기심이 생겼다면 LA의 인디 브랜드 브룩 칼라한(Brooke Callahan)의 아이템을 눈여겨봐도 좋겠습니다. 포플린 원피스, 코튼 백, 그리고 ‘잇걸’ 사이에서 입소문 난 팬츠까지, 일상에서 활용할 캐주얼 아이템이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