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집을 내 속도대로 넘긴다는 것,’포토북 속의 매그넘 1943-2025’展
한때 부지런히 사진집을 모았습니다.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미술 작품을 담은 도록보다 훨씬 더 생생한 물성이 느껴지기에, 마치 작품을 소유한 듯 뿌듯했지요.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수집한 건 바로 매그넘 포토북입니다. 뮤지엄한미에서 열리는 전시 <포토북 속의 매그넘 1943-2025> 소식이 무척 반가웠던 이유입니다.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는 1947년에 창립된 세계적인 사진가 협동조합이지요. 이번 전시는 뉴욕, 런던, 파리의 매그넘 사무소 내 포토북 라이브러리에 소장된 책들 가운데 엄선한 포토북을 처음으로 모아 선보입니다. 매그넘 소속 사진가들이 제작한 포토북 150여 권을 통해 지난 80년 동안 이들이 구축한 사진 역사, 더 나아가 현대사의 흐름을 조망하는 거지요. 그저 단순한 사진전이 아니라 포토북을 어떻게 하나의 창작 매체로 다룰 수 있는지에 집중한다는 게 재미있습니다.
특히 이번 전시는 매그넘 소속 작가이자 포토북 장르의 발전에 기여해온 사진가 마틴 파(Martin Parr)와 사진예술의 영역을 꾸준히 확장하고 있는 사진가 천경우가 공동 기획자로 참여해 관심을 모았습니다. 이들이 제시한 키워드를 바탕으로, 매그넘 작가들의 포토북을 다양한 시선과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요. 현대 문화의 굵직한 한 장르를 치열하게 일구어온 사진가들이 어떻게 뷰파인더에 세상을 담고자 했고, 어떻게 비판적, 역사적 사유를 잃지 않았으며, 어떻게 감상자와 공유하고자 했는지 말이지요. 이들의 포토북은 역사와 문화를 증언하는 충실한 목격자 역할을 합니다.
매그넘 포토스는 그 유명한 사진가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카파, 조지 로저, 그리고 데이비드 사이무어가 의기투합해 조직했습니다. 길이길이 회자되는 이들의 명성은 매그넘 회원이 되기 위한 자격 요건이 얼마나 까다로웠는지를 방증하죠. 그렇게 매그넘 회원이 된 사진가들은 현대사의 곳곳을 포착해왔습니다. 베르너 비쇼프는 한국전쟁을 기록했고, 아바스는 이란 혁명을, 그리고 수잔 마이젤라스는 니카라과 혁명을 취재했습니다. 그뿐인가요. 9.11 테러와 최근의 팬데믹 시기까지, 온 인류가 역경을 겪을 때도 이들은 깨어 있었습니다. 이들의 사진은 세상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세상을 보는 다채로운 시선을 제시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전설적인 매그넘 사진가들의 사진뿐만 아니라 한결 내밀하고 친밀한 부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다른 숱한 사진전과 차별화합니다. 마틴 파가 기획한 파트에서는 포토북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와 작업 과정을 입체적으로 제시합니다. 뮤지엄한미가 소장한 주요 사진들을, 그 시절의 아날로그 방식으로 보여준 것도 좋은 아이디어였고요. 천경우가 기획한 파트에서는 각각의 포토북을 우리 인생에 빗대어, 인류 삶의 단면을 비춥니다. 포토북을 다루는 전시인 만큼 직접 책을 만지고 읽을 수 있는 리딩룸도 함께 운영해 전시의 감흥을 손끝의 감각으로 가득 담아 올 수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시대가 급변하면서 사진의 의미도, 가치도, 역할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보면서 ‘그럼에도’ 진실로 중요한 건 변치 않는다고 확신했습니다. 바로 세상을 보는 시선과 이를 세상과 공유하고자 하는 소통과 공감의 열망입니다. 소셜 미디어에 예쁘고 팬시하며 일상적인 사진이 넘쳐날수록, 우리의 복잡다단한 세계를 관통하는 예리하고 묵직한 시선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백 마디 말보다, 수십 장의 글보다 때로는 한 장의 사진이 더욱 강력하고, 그런 사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전시를 관람하고 와서 저는 구석에 먼지 쌓인 매그넘 포토북을 다시 들춰보았습니다. 당근마켓에 내다 팔지 않은 게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