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고 먹고 사랑하기 좋은 가을의 책 4권
<달리기 인류> – 마이클 크롤리(서해문집)
“근데 왜 혼자 달리려고 했어요?” 나는 지친 상태였고 그룹의 흐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으며, 내 페이스대로 달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혼자 뛰는 건 그냥 건강을 위한 거예요.” 그가 단호히 말했다. “달라지고 싶으면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달려야 해요. 자기 페이스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 속도에 맞춰야 해요.“ 앞으로 몇 달 동안 내게 뼈저리게 각인될 말이었다.
10월은 뛰기 좋은 계절이다. 러닝 붐과 함께 달리기에 대한 설왕설래가 가장 뜨거운 지금, 러너를 위한 특별한 교양서가 출간됐다. 인류학자이자 작가이며 러너인 마이클 크롤리는 ‘달리기의 나라’ 에티오피아로 향해, 매일 새벽 신성한 산을 달리는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며 15개월 동안 수많은 러너를 인터뷰했다. 그는 오랫동안 무지와 편견 속에 있던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의 이야기를 인류학적 시선으로 쉽고 흥미롭게 풀어낸다.
달리기는 ‘재능’의 영역일까, 아니면 ‘습관과 환경’의 결과일까? 혼자 하는 운동일까, 함께 하는 것일까? 세계적인 선수들은 어떤 방식으로 훈련할까? 우리가 달리기를 이야기할 때 떠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물음이 다층적인 문화의 맥락 속에서 생생하게 탐구된다. 꼭 달리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다. 강추!
<테니스를 읽는 시간 > – 김기범(소우주)
집중의 대상은 네트 건너편 상대도, 공략해야 할 지점도 아닌, ‘지금 이 순간, 내가 쳐야 할 노란색 테니스공’ 그 자체다.
새로운 취미가 생기면 관련 책을 모으는 일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된다. 그렇게 열리는 새로운 세계가 바로 ‘취미 생활’의 또 다른 매력이다. <테니스를 읽는 시간>은 포핸드 기초부터 경기 규칙, 테니스에서 비롯된 브랜드 라코스테와 프레드 페리 이야기까지 담아낸, 테니스 버전 ‘알쓸신잡’ 같은 책이다.
누군가는 책 읽을 시간에 차라리 연습을 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테니스 실력은 쉽게 늘지 않고, 그 지난한 시간을 견디려면 훈련뿐 아니라 애정을 지탱하고 유지해줄 지식 또한 필요하다. 저자는 대학 테니스 동아리 주장 출신의 스포츠 기자, 유튜버 ‘키키홀릭’으로 활동 중인 김기범이다. 테니스와 맺은 30년 인연을 해박한 정보와 정제된 문장으로 풀어냈다. 기술서 위주의 기존 테니스 도서와 달리, 이 책은 기술·역사·산업·스타플레이어까지 ‘테니스’라는 키워드로 확장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초보자는 흥미롭게 입문할 수 있고, 마니아는 새로운 시선과 깊이를 얻을 수 있는, 말 그대로 ‘테니스를 읽는’ 경험을 선사한다.
<파스타 마스터 클래스> – 백지혜(세미콜론)
참, 카치오 에 페페를 물과 함께 먹는 것은 유죄. 당장 와인을 딸 것!
완고한 한식파인 내가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양식, 파스타. 프라이팬에 무심히 좋아하는 재료를 이것저것 넣어 만들고는 배가 터질 때까지 먹는, 집에서 만들어 먹는 넉넉하고 자유로운 파스타의 매력을 알게 되면 밖에서 사 먹는 파스타가 시시해진다. 이런 집구석 파스타 셰프를 위한 책 <파스타 마스터 클래스>가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됐다.
이 책은 쿠킹 클래스와 예약제 식당 제리코레서피를 운영하는 백지혜 작가가 오랜 실전 경험을 집약한 파스타 레시피 북이다. 작가는 ‘어떻게 하면 더 쉽게 만들 수 있을까?’ ‘다음에도 또 먹고 싶어질까?’를 고민하며 지속 가능한 파스타를 위한 나름의 고민을 계량해 쉽고 멋진 파스타 레시피를 만들어냈다. 책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은 바로 계절에 맞춰 소개된 계절 파스타를 만들어 먹는 것. 이번 개정판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에 해 먹기 좋은 ‘달걀장 스파게티’ ‘가지 콜드 카펠리니’ ‘감태페스토 엔젤헤어’ ‘카치오 에 페페’ 네 가지 레시피가 새로 추가됐다.
<우리는 사랑하기 좋은 팔을 가졌구나> – 강보원 외 9인(민음사)
가을, 어렵게만 느껴지던 시를 주머니에 쏙 넣어 다니며 행복하고 낭만적인 경험을 하고 싶다면 꼭 사야 할 책이 있다. 바로 민음의 사랑시 앤솔로지 미니북 <우리는 사랑하기 좋은 팔을 가졌구나>이다. ‘민음의 시’ 시리즈에서 엄선한 사랑의 언어가 작은 책 속에 모여 가볍지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아직 시가 어렵다. 하지만 시집을 읽고 또 팔아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오랜 시간을 버티다 보니 오히려 예전보다는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시를 마주하게 되었다. 여전히 멋진 해설이나 비평은 못하지만, 좋아하는 문장을 만나면 부끄럼 없이 감동하며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그런 마음으로 이 시집의 제목(우리는 사랑하기 좋은 팔을 가졌구나)만으로도 이 책을 권하지 않을 수 없다.
‘다정한 동네 서점에서만 만날 수 있는 불편한 낭만’을 찾아, ‘오래도록 손잡고 걷기 좋은 가을 산책길’을 걸어, 마침내 ‘빨간 하트를 품은 작은 시집을 주머니에 넣는 기쁨’까지. 책과 함께하는 기쁨을 온전히 누려보길 바란다.
돌을 기르기로 했어 동그랗고 매끄러운, 한 손에 쏙 – 들어가는, 한 개의 돌을 사랑하기로 했어 돌을 사랑하게 되자 주머니가 필요했어 필요는 사랑의 충분조건, 주머니도 사랑하게 되었어
주머니는 외투에 달려 있고 외투를 사랑하게 되면 외투를 입을 수 있는 날씨를 사랑하게 되고 날씨를 사랑하게 되면 내일을 기다리게 되는 연쇄 작용
– 임지은 ‘반려돌’ 中
민음사 조아란 부장이 추천하는 10월의 책
마이클 크롤리 <달리기 인류>
김기범 <테니스를 읽는 시간>
백지혜 <파스타 마스터 클래스>
강보원 외 <우리는 사랑하기 좋은 팔을 가졌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