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제 옷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면 그걸로 충분해요”, 마틴 로즈
인터뷰 다음 날, 사진 촬영을 위해 나이키 청담 사무실에서 마틴 로즈를 다시 만났다. 잘 자고 일어난 듯 어제처럼 편안하게 웃어 보였다. “시차를 전혀 못 느꼈어요. 통잠을 푹 잤죠.” 그 웃음이 단번에 촬영장 공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스태프와 반가운 인사가 잦아들 무렵, 서울의 스트리트 포토를 엮은 작은 사진집 <멋(MUT)>을 건넸다. 마틴은 책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감탄사를 연발하다가 잠시 멈췄다. 그러고는 두 눈을 들여다보며 포옹을 건넸다. 앞선 반응과 분명히 구분되는 느릿한 속도로 양어깨를 깊이 감싸안았다. 세심한 포옹이었다. 인터뷰가 끝난 후 계속 머릿속을 맴돌던 고민이 마틴의 품 안에서 정리됐다. ‘홈(Home)’을 한국어로 어떻게 옮겨야 할지 고민하던 차였다. ‘집’이나 ‘가정’으로 옮길 수 없는 ‘마틴의 세계’를 한 단어로 꿰맬 단어는 ‘품’이다.
마틴 로즈는 동명의 브랜드를 운영하며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 스트리트와 럭셔리,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간다. 대가족 속에서 자라며 언니와 사촌 대런(Darren)을 따라다니던 유년 시절, 공연장과 거리에서 옷을 배웠다. 마틴에게 패션은 체계가 아니라 실제 거리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옷이었다. 마틴 로즈가 나고 자란, 마틴 인생의 첫 번째 품 안에서 옷을 통해 사람을 관찰하고, 관계를 이해하는 법을 익혔다.
그 시선은 마틴이 자기 손으로 일군 ‘마틴 로즈’의 품 안에서도 이어진다. 사진가 제이크 에반스(Jake Evans)는 마틴 로즈 2026 봄/여름 쇼를 두고 “원 빅 패밀리. 모두가 가족 같았다”고 했다. 모델은 거리에서 만난 소년부터 클럽 신의 베테랑까지 뒤섞였다. 프로 모델의 계산된 포즈가 아니라 서로를 툭툭 치며 농담을 주고받는 표정이 현장을 채웠다. 스태프와 모델들은 가족과 친구, 연인을 데려와 순간을 나눴다. 마틴이 남편, 자녀와 이룬 ‘홈’도 마찬가지다. 마틴은 육아가 자신을 지치게 한 적 없다고,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적 또한 없다고 말한다.
이번 ‘나이키×마틴 로즈 스포츠’ 컬렉션은 그 품을 한층 넓힌 결과다. 마틴 로즈는 게임 속 세상을 새로운 운동장으로 바라본다. “게임은 우리가 스포츠를 바라보는 또 다른 렌즈예요.” 축구장에서 콘솔로, 현실에서 가상으로, 스포츠의 경계를 새로 쓴다. “게이머도 운동선수예요. 자기 모습 그대로 있으면 돼요. 실력만 있으면 되고 입문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죠. 민주적인 세계예요.” 마틴은 이번 협업의 핵심을 포용으로 정의한다. 그래서 마틴 로즈는 옷만 짓지 않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함께 짓는다.
어제저녁 비행기로 도착했죠. 런던에서 서울, 다시 런던으로 곧장 돌아갈 계획이라고요. 잠은 잘 잤나요?
저는 시차에 금방 적응해요. 정말 잘 자요. 오전 8시 30분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팀원들과 수다를 떨었어요. 그리고 저 사랑스러운 창밖 풍경을 한참 봤죠. 아직 호텔 밖으로 나가진 않았는데 기대돼요. 한국은 처음 오는데, 어서 거리로 나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나이키×마틴 로즈 스포츠’ 컬렉션을 위해 서울에 왔죠. 나이키와 협업할 때는 늘 새로운 커뮤니티를 발견하는데, 이번엔 ‘스포츠’를 ‘게임’ 영역으로 확장했죠.
제 아들이 게임을 정말 많이 해요. 그런데 아이가 다른 사람이 게임하는 것도 보더군요. 우리가 테니스나 축구 보듯이요. 게임을 하는 것도 보는 것도 하나의 스포츠 문화가 되어가고 있었죠. 그 현상이 흥미로웠어요. 게이머를 운동선수처럼 바라보기로 했죠. 그들의 집중력, 전략, 팀워크는 기존 운동선수와 다르지 않아요. 그리고 ‘슈퍼히어로’처럼 표현하고 싶었어요. 일부러 캠페인 이미지와 영상도 약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톤으로 만들었어요. 새롭지만 익숙한 그런 이중적인 감정을 주고 싶었죠.
게이밍을 배우기도 했나요?
아뇨. 저는 게임에 정말 소질이 없어요. 하지만 e스포츠 플레이어를 만나고 그들의 생활을 배웠어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는 경험이었죠.
나이키와는 벌써 8년째 인연을 이어가고 있죠.
‘커뮤니티’란 우리에게 변함없이 중요한 공동 관심사예요. 나이키와 일하면서 이전에는 접근하지 못한 사람들과 장소에 많이 닿을 수 있었죠. 이번에도 나이키 덕분에 e스포츠 플레이어를 만났어요. 저 혼자였다면 깊숙이 들어가지 못했을 세계죠. 협업이란 서로의 강점을 합치는 일이잖아요. 저의 창조성이 나이키를 만나 더 깊고 넓어졌어요.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마틴 로즈다운’ 디테일은 무엇일까요?
지난 2023 협업은 여성 축구를 주제로 했죠. 저는 늘 ‘풋볼 톱’을 제 컬렉션에서 반복적인 모티브로 사용해왔어요. 이번에도 풋볼 요소가 들어간 건 자연스러웠어요. 또 캐스팅이요. 제게 낯설었던 커뮤니티를 찾아 연결하는 과정이 이번에도 핵심이었어요. 그리고 샥스는 이제 정말 마틴 로즈를 상징하는 아이템이 된 것 같아요.
맞아요. ‘나이키×마틴 로즈 샥스 MR4’는 협업의 시그니처 아이템이 됐죠.
샥스는 원래 남성용 운동화였어요. 저는 그걸 잘라서 뮬 형태로 만들었죠. 굽도 높이고 앞코는 각지게 다듬었어요. 운동화의 기능성을 유지하면서도 드레스 슈즈의 미학을 갖게 된 거죠. 결과적으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남성화도, 여성화도 아닌 실루엣이 완성됐어요. 저는 그 사이의 크로스오버 존을 좋아해요.
스니커즈뿐 아니라 축구 유니폼, 후디, 팬츠, 크로스 보디 백 등 실용적인 아이템이 많아요. 운동할 때 정말 필요한 아이템이죠.
현대 운동선수들이 입을 유니폼이라고 간주하고 만들었어요. 게이머들이 몰입할 때 느끼는 집중, 여유, 자기표현을 옷으로 옮겼죠. 모든 스포츠 유니폼이 그렇듯 기능은 분명해야 해요. 편안함, 활동성, 유연함. 그게 이번 라인의 핵심이에요. 게임할 때 느끼는 자유로운 에너지를 그대로 담고 싶었어요.
그래서인지 넉넉한 실루엣이 마틴 로즈 2026 봄/여름 컬렉션과 대조적이에요.
맞아요. 마틴 로즈 2026 봄/여름 컬렉션은 타이트하고 작았어요. 팬츠는 짧고 슬림하고, 재킷 실루엣을 일부러 왜곡했죠. 반면 나이키는 정반대였어요. 오버사이즈 실루엣에 트랙 수트 구조였죠. 흘러내리듯 낙낙했어요. 정반대지만, 둘 다 제 안에 있는 리듬이에요. 하나는 압축된 에너지, 하나는 해방된 에너지죠. 두 가지가 제 안에서 연결돼 있어요.
그런 차이는 계획된 건가요?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아요. 직관이 중요해요. 옳다고 느끼면 따라가죠. 저는 하나의 아름다움을 제시하려는 사람이 아니에요. 다양한 사람, 다양한 몸, 다양한 태도에 더 관심이 있어요. 그게 저를 계속 움직이게 해요.
그래서 거리 캐스팅을 꾸준히 하는군요. 당신의 런웨이에는 전문 모델이 아니라 거리에서 캐스팅한 사람들이 오르죠.
맞아요. 저는 사람들이 진짜 좋아요. 모델이 아닌 사람들,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이요. 물론 모델도 써요. 모델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어떤 룩에는 모델이 꼭 맞거든요. 중요한 건 ‘진짜로 연결되는 느낌’이에요. 관객이 그 인물을 보고 ‘나도 저 옷 입을 수 있겠다’고 느끼는 순간을 바라죠. 그게 제가 말하고 싶은 아름다움이에요.
지난 2018년 <보그 코리아> 인터뷰에서 “컬렉션을 보고 공감할 수 있으면 된다.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다”고 한 적 있죠. 7년이 지난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나요?
늘 같아요. 그건 제 디자인의 중심이에요. 사람들이 제 옷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면 그걸로 충분해요. 모두에게 똑같은 아름다움은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늘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져요. 그래서 2025 봄/여름 컬렉션에서 ‘실리콘 코’를 덧붙이기도 했죠. 아름다움이란 뭘까? 우리는 왜 스스로 판단할까? 이런 인간적인 질문이 패션보다 더 중요해요. 패션은 그걸 보여주는 도구일 뿐이에요.
바쁜 스케줄에도 ‘지금 잘 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요?
모든 게 자연스럽게 흘러갈 때요. 일이 많아도, 바빠도 괜찮아요. 그 모든 노력이 올바른 방향으로 이어지면 괜찮죠. 그런데 뭔가 너무 힘들고 벽처럼 느껴지면, 그건 제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신호예요. 노력은 필요한데, 그 노력이 너무 힘들게 느껴지면 방향을 바로잡아야 해요.
마지막으로 지금의 마틴 로즈가 바라는 건 뭘까요?
제 옷이 모두에게 닿길 바랍니다. 그리고 옷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길 원하고요. 국적, 나이, 성별은 상관없어요. 결국 제가 전하고 싶은 건 인간적인 이야기예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감정.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연결. 그게 제 패션이에요.
품을 열어두는 마틴 로즈의 인터뷰 풀 버전은 <보그 코리아> 12월호에 공개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