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남자 친구 있다는 게 부끄러운 일인가요?
‘요즘은 남자 친구가 있다는 게 부끄러운 일인가요?’ 지난 25일 영국 <보그>에 올라온 이 기사가 세계를 휩쓸었다. <보그>에서 패션과 관련되지 않은 기사에 트래픽이 폭주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가늠해볼 때, 이 기사 내용이 품은 내용에 독자들이 모두 공감했거나 혹은 분노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같은 현상이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건 맞다. 해외에서 먼저 이름 붙였지만, 우리나라도 최근 연애를 은근슬쩍 티 내는 일명 ‘소프트 론치(Soft-launch)’가 SNS 피드를 수놓는다. 함께 찍은 사진에서 남자 친구의 손만 크게 확대하거나, 꽃다발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사진 등 얼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행태를 뜻하는 말로, 언제부턴가 얼굴을 공개하는 것보다 감추는 분위기로 달라지고 있다. 내 친구들이 애인의 얼굴 사진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그저 나이 먹어서 사진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거나, 남한테 보여주는 게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기지만, 젊은 세대는 다르다. 샹테 조셉(Chante Joseph)이 분석한 아래 내용을 확인해보라. 그녀는 SNS에서 ‘내 남자 친구’라는 단어만 나와도 상대를 아예 뮤트(Mute, 음 소거)해버린다고 했다. 그녀에게 남자 친구가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재미있어서 팔로우했는데 갑자기 그 콘텐츠가 ‘내 남자 친구’ 일변도로 변하는 것만큼 싫은 것도 없다. 이건 아마도 오랫동안 좋아하는 작가들이 ‘보이프렌드 랜드’라고 부르는 세상을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의 정체성이 파트너의 삶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 말이다. 여성은 남자를 파트너로 얻고 그 관계를 유지하는 능력으로 보상받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지위가 상승했으며, 찬사를 받았다. 이것이 소셜 미디어에서 영향력을 높이거나 금전적 이익으로 이어지면서 그로 인한 압박감이 더 심해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온라인에서 관계를 보여주는 양상에 뚜렷한 변화가 있었다. 이성애 여성들은 연애 파트너를 숨김없이 공개하기보다는 은근한 신호를 활용하고 있다. 운전대에 놓인 손, 식사 중 부딪치는 술잔 또는 뒷모습 같은 것들. SNS에 올린 결혼사진에서 얼굴을 흐리게 처리하거나 전문적으로 편집한 비디오에서 약혼자를 의도적으로 잘라낸 경우는 더 혼란스럽다. 파트너의 얼굴을 가리는 여성들은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지우고 싶지만 SNS에는 올리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여성들은 이제 남자 친구가 창피한 걸까? 아니면 더 복잡한 일이 벌어지는 걸까? 내 생각에는 여성이 두 세계를 넘나들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파트너를 둠으로써 얻는 사회적 혜택을 누리면서도 남자 친구에게 집착하는 구태의연한 이미지로 비치고 싶진 않은 것이다. 작가이자 활동가인 조에 사무지(Zoé Samudzi)는 “그들은 연인 관계의 보상과 축하를 원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평범한 일인지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이성애 비관주의(Heterofatalism)가 만연한 시대에 남자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여성처럼 보이긴 싫지만, 파트너가 있는 데서 오는 사회적 영향력도 원한다.
하지만 이미지만의 문제는 아니다. 내가 인스타그램에서 6만5,000명의 팔로워에게 질문을 던지자 많은 여성이 사실 ‘미신’을 믿는다고 말했다. 일부는 ‘이블 아이(Evil Eye, 악의 눈초리)’를 두려워했는데, 이는 그들의 행복한 관계가 다른 사람의 질투심을 유발해 관계를 끝낼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또 어떤 여성은 헤어지고 난 뒤에도 남아 있을 게시물을 우려했다. 38세의 니키(Nikki)는 “12년간 연애를 했지만 온라인에 그에 대해 올리거나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죠. 최근 헤어졌고, 앞으로도 남자에 대해 게시하지 않을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로맨틱한 편인데, 12년이나 만난 남자도 나를 부끄럽게 만들 수 있기에 그 관계를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게 너무 촌스럽게 느껴져요.”
하지만 싱글이든 파트너가 있든 여성에게서 느껴지는 건 남자를 사귀는 데서 오는 죄책감이라는 압도적인 인식이었다. 뉴욕 기반의 인플루언서 할리(Halley)와 재즈(Jaz)가 진행하는 ‘딜루저널 다이어리즈(Delusional Diaries)’ 팟캐스트에서 그들은 남자 친구가 있으면 왜 루저처럼 느껴지는지 토론했다. “왜 남자 친구가 있는 것이 공화당원 같은 느낌일까요?”라는 댓글은 1만2,000개의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았다. “남자 친구는 유행이 지났어요. 그들이 제대로 행동하기 전까지는 다시 유행하지 않을 거예요”라는 또 다른 댓글은 1만 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남자 친구가 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여성의 아우라에 타격을 줍니다”라고 어느 댓글 작성자가 주장했다. 재미있게도 이 두 진행자 모두 파트너가 있는데, 이것은 내가 온라인에서 흔히 보는 현상이다. 파트너가 있는 여성조차도 남성과 이성애에 대해 비판한다. 부분적으로는 다른 여성과의 연대감 때문이지만, 이제 보이프렌드 걸이 되는 것이 근본적으로 멋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이 여성들의 상상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남자 친구 관련 콘텐츠를 보는 데 거부감을 느낀다. 나를 비롯해서 모두가 그렇다. 작가이자 <보그> 컨트리뷰터인 스테파니 예보아(Stephanie Yeboah)는 소셜 미디어에서 남자 친구를 공개했다가 수백 명의 팔로워를 잃었다. “여전히 사귀고 있더라도 SNS에는 올리지 않을 거예요. 요즘 같은 때 파트너에 대한 글을 끊임없이 올리는 건 쑥스럽고 부끄러운 일이죠.” 그리고 덧붙였다. “파트너에 대해 올리면서 죄책감을 느낄 때도 있어요. 데이트 환경이 정말 형편없다는 것을 알기에 자랑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요.”
콘텐츠 크리에이터 소피 밀너(Sophie Milner)도 로맨틱한 관계를 공유할 때 사람들이 언팔로우하는 것을 경험했다. “이번 여름에 한 남자가 저를 시칠리아로 데려갔어요. 제가 구독자 섹션에 그 이야기를 올렸더니 사람들이 ‘제발 남자 친구 사귀지 마!’ 같은 댓글을 달더라고요.” 그는 연애를 하면 콘텐츠가 재미없어진다는 걸 인정한다. “싱글일 때는 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최고의 자유를 누려요. 모든 여성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연애를 하면 온라인에서 더 진부하고 무미건조해지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나눈 대화에서 한 가지는 확실하다. 사회적 관행이 바뀌고 있다는 것. 파트너가 있다는 것이 더 이상 여성성을 확인해주지 않고, 성취로 여겨지지 않으며, 오히려 싱글이라고 선언하는 것이 과시적인 행위가 됐다는 것이다. 이성애 여성으로서 우리는 다른 성적 소수자들이 겪어온 문제, 우리 정체성의 정치화에 직면하고 있다. 이성애를 당연하게 여겨왔기 때문에 이를 평가하거나 비판의 대상으로 삼기 어려웠다. 하지만 전통적인 성 역할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이성애에 대한 맹목적인 신념을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는지도 모른다.
물론 사랑에 빠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사랑을 찾으려다 실패했거나 아예 시도하지 않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공개적으로 이성애 규범을 재고하고 비판하는 한, ‘남자 친구가 있다’고 밝히는 것은 공식적인 생활에서 다소 취약하거나 논쟁적인 요소로 남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남자 친구가 있다고 얘기했을 때 사회생활에 집중하지 못한다거나 남자에 푹 빠져 있다고 평가받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많은 여성이 싱글 라이프를 되찾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흐름과 함께 본격화되고 있다. 한때 싱글이라는 것은 결국 고양이를 잔뜩 키우는 노처녀가 될 거라는 경고의 의미였지만, 이제 동경의 대상이자 바람직한 삶의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애초에 여성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수백 년간의 이성애 동화에 마침표를 찍는 일이나 다름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