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다 완벽한 즐거움! ‘알렉스 조노’가 전하는 아이처럼 달리기
달리기가 언제부터 이렇게 진지한 일이 되었을까. 페이스를 계산하고, 기록을 줄이고, 목표 시간을 정하는 일 말이다. 케이프타운을 기반으로 한 러닝 브랜드 알렉스 조노(Alex Zono)의 CEO이자 디자이너 알렉산더 조노메시스(Alexander Zonomessis)는 말한다. “버스를 잡으려고 뛰는 당신도 이미 러너예요.” 그에게 러닝은 거창한 목표나 성취보다 훨씬 단순하다. 친구와 수다를 떨며 달리고, 끝나고 나서 맥주 한잔을 마시는 것. 그저 내달리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아이의 뜀박질과 비슷하다.
럭셔리 브랜드에서 일하던 시절, 남은 실크 원단으로 러닝 쇼츠를 만들어 산을 뛰어다니던 그는 이제 컬러풀한 러닝 웨어와 자수 슬로건 모자로 전 세계 러너들을 사로잡고 있다. 창립 5년 만에 글로벌 러닝 신에서 존재감을 키운 알렉산더는 서울에서 영감받은 한정판 캡슐 컬렉션을 공개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꽃을 한 아름 안아 들고서.
때마침 서울마라톤 기간이에요. 혹시 출전도 하나요? 네, 풀 코스(42.195km)를 뛰어요. 여행 계획을 마라톤 대회 일정에 맞춰 짜는 걸 좋아해서 이번에도 무척 기대 중이에요.
알렉스 조노 모자를 쓰면 모두 알아볼 것 같은데, 준비해둔 의상도 있나요? 대회 때는 항상 제가 처음 만든 ‘I Dig Running’ 샘플 모자를 써요. 좋은 에너지를 주는 일종의 행운 부적이죠. 거기에 이번 캡슐 컬렉션 셔츠랑 브라운 컬러 타이츠를 입을 거예요. 신발은 브룩스를 신고요!
알렉스 조노를 알린 트러커 햇. 귀여운 슬로건을 자수로 새겼다. Courtesy of Alex Zono
서울에서 영감받은 캡슐 컬렉션의 문구는 ‘Run for the Seoul’!
서울에서 달리는 게 처음은 아니죠? ‘서울’에서 영감받은 컬렉션이라 하니 언제,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했어요. 여행을 갈 때마다 해당 도시에서 가보고 싶은 카페 리스트를 만들어두고, 호텔에서 그곳까지 달려가요. 돌아올 땐 우버를 타지만요.(웃음) 도시를 탐험하기에 정말 좋은 방법이죠.
서울엔 멋진 카페가 정말 많잖아요. 그렇게 방문할 때마다 한강을 건너 골목 구석구석을 달렸어요. 보통 서울을 거대한 빌딩이 가득하고 기술이 발달한 도시로 생각하지만, 거리를 달려보면 생동감 넘치는 삶과 따뜻함이 가득하다는 걸 알게 돼요. 오늘 아침에도 어떤 아저씨께서 ‘멋지다, 계속 열심히 달려라’라고 응원해주셨어요. 정말 사랑스러운 순간이었죠. 이번 컬렉션의 꽃 모티브도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에서 영감받은 거예요.
개인적으로 인간은 직립보행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달리기의 가장 큰 장점이 뭘까요? 저 같은 사람도 그 세계로 이끌어주세요. 결국 ‘사람’인 것 같아요. 학창 시절 친구들 권유로 방과 후 파크 런(Park Run) 했던 경험을 잊을 수 없어요. 한바탕 달리고 난 뒤에 어울려 놀곤 했죠. 성인이 된 후 케이프타운에서 런던으로 이사했을 때도 ‘주말에 달리기하러 가자’는 친구가 있었어요. 당시 서핑에 빠져 있었는데, 런던엔 마땅한 장소가 없잖아요. 친구 덕분에 다시 달리기 시작했죠. 나란히 달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끝난 뒤에는 같이 커피도 마실 수 있는 정말 사교적인 운동이에요. 누구나 달릴 수 있기 때문에 부담이 적다는 점도 좋고요.
브랜드 스토리를 접하고 대화를 나눌수록 아이들의 달리기가 떠올라요. 좋은 일이 있어 방방 뛰면서 달린 적도 있지만, 그저 친구들과 달리다 보면 즐거웠죠. 맞아요. 제 브랜드가 지향하는 바도 딱 그래요. 아이들의 동심과 젊은 에너지를 브랜드에 계속 담아내려고 하죠. 웰니스가 대세가 되면서 많은 사람이 러닝에 진지하게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잖아요. 거창한 이유 필요 없이 그저 달리고 난 뒤 ‘와, 정말 즐거웠다!’라고 느끼길 바라죠. 밝은 색상을 쓰는 것도 옷을 보는 순간 뛰고 싶어질 만큼 설레게 만들고 싶어서고요. 입는 즉시 기분이 좋아지도록!
디자인 영감 역시 사람들에게서 얻나요? 맞아요. 평소 사람들을 관찰하며 사진을 찍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러닝 문화가 무척 흥미롭거든요. 대회에 나가서 받은 기념 티셔츠를 다음 대회 때까지 1년 내내 입고 달려요. 그러다 보니 정말 엉뚱하고 기발한 조합을 발견하게 되죠. ‘와, 보라색과 초록색을 저렇게 매치하다니 정말 환상적이네’라고 감탄할 때도 있어요.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태도 또한 영감을 주고요. 멋있어 보이려 애쓰지 않는 모습이 묘하게 멋지거든요.
브랜드 초창기에 실크 러닝 쇼츠가 있었어요. 실크를 입고 러닝을 하다니, 자주 빨 수 없는 소재잖아요. 굉장한 럭셔리라고 생각했어요. 케이프타운 브랜드인 루칸요 음딩이(Lukhanyo Mdingi)에서 일할 때, 실크 재킷을 만들고 남은 원단이 꽤 있었죠. 보통 스포츠웨어는 합성섬유로 만들잖아요. 산에서 달리는 걸 좋아하는데, 대자연 속에서 합성섬유 옷을 입고 달리는 게 왠지 모순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래서 자투리 실크 원단으로 반짝이는 금색 쇼츠 한 벌을 만들었죠. 입는 순간 ‘이거 진짜 골 때리는데(Crazy) 너무 멋지다. 정말 마음에 들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실크는 촉감부터 다르잖아요. 물론 세탁을 했더니 엉덩이가 다 드러나는 ‘부티 쇼츠’가 되어버렸지만요.(웃음) 시행착오 끝에 세탁 후에도 줄어들지 않도록 폴리-실크 혼방 소재를 찾아냈어요. 하지만 그때 만든 실크 쇼츠는 ‘내가 가고 싶어 하던 방향이 이거였어’라고 확신을 준 첫 제품이었죠.
커다란 도트가 귀여운 마라톤 쇼츠.
러닝은 당신을 사랑해요!
알렉스 조노가 추구하는 수공예적 관점, DIY, 정성, 인간적인 것 등은 요즘 하이엔드 브랜드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바이기도 하죠. 저는 이 브랜드가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러닝 브랜드가 되길 바라요. 모든 이의 취향에는 안 맞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10 꼬르소꼬모 같은 편집숍에 있을 법한, 사람들의 시선을 확 사로잡는 제품을 만들고 싶어요. 제작 방식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개인적으로 청바지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멋이 더해지는 옷을 좋아해요. 입을수록 나만의 흔적이 남으면서 옷에 ‘성격(Personality)’이 생기죠. 브로치나 핀 하나만 달아도 나만의 특별한 옷이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DIY적 요소나 디테일을 통해 훨씬 개인적이고 흥미로운 옷을 만들고 있어요. 궁극적으로는 일상복과 운동복의 경계를 지우는 것이 목표예요.
요즘은 아니지만 과거 한국에는 중고등학생이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명찰 문화가 있었어요. 그래서 트러커 햇에 자수로 새긴 슬로건을 보았을 때 익숙하기도 하고, 좀 더 중요하고 각인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인기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죠. ‘Alex’ 로고에 얽힌 이야기랑 비슷해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교복을 입기 때문에 모두가 똑같은 블레이저나 운동복을 입었죠. 그런데 제가 옷을 자꾸 잃어버리니 어머니가 제 모든 옷에 이름을 새겨주셨고, 그 글씨를 스캔해서 만든 게 바로 지금의 로고예요. 어린 시절 제 모습이 담겨 있죠.
자수 방식을 선택한 건 ‘할머니가 나를 위해 직접 놓아주신 자수’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저희 할머니가 재봉사여서 실제로 정성이 담긴 선물을 많이 해주셨거든요. 그래서 저희 모자에는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시간과 정성까지 담겨 있어요. 훨씬 더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하고 싶어지죠.
슬로건은 어떻게 선정하는지도 궁금해요. 엉뚱하고 사소한 순간에서 시작돼요. ‘Ten Toe Express’는 저희 어머니가 제가 학교 다닐 때 자주 하시던 말씀이에요. 하굣길에 전화를 걸어 “엄마, 나 좀 데리러 와주면 안 돼?”라고 하면 어머니는 “텐 토 익스프레스 타고 오렴!”이라고 말씀하셨어요. 10개의 발가락, 즉 걸어오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저는 달리기를 무척 좋아하게 됐죠.
‘Running Loves You(러닝이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문구도 그렇게 탄생했어요. 사람들이 “달리기 정말 싫어, 너무 힘들어”라고 말하면 제가 “러닝이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맞받아쳤거든요.
최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문장이 있다면요? 제가 예전부터 정말 만들고 싶었던 게 하나 있는데, 꽤 웃겨요. ‘I’ll Run Tomorrow(달리기는 내일부터)’죠. 아침에 눈을 뜨면 ‘음, 내일 뛰지 뭐. 내일 하면 돼’라고 생각하잖아요.
한국에도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라는 말이 있어요. 딱 그 느낌이에요!
서울 컬렉션도 밝고 화사해요. 저는 살면서 도시가 총천연색이라고 느낀 적이 별로 없거든요. 서울 하면 떠오르는 색상은 뭐예요? 노란색이요. 올 때마다 만난 모든 분이 환대해주시고, 따뜻하고, 밝았거든요. 외부에서 보기에 서울은 콘크리트 가득한 차가운 도시 같을지 모르지만, 제가 겪은 서울 사람들은 거리에서 만나는 모르는 분들조차 정말 친절했어요. 분명 어떤 ‘밝음’이 숨어 있는 것 같아요. 누구와 대화를 나누든 모두 행복해 보이고요. 서울은 확실히 노란색이에요.
앞으로 한국에서의 계획도 알려주세요. 남은 일정 중 가장 중요한 건 마라톤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에요. 한국 시장에 대해서는 그저 즐거운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여기 와서 여러분과 어울리고, 같이 달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건 언제나 즐겁거든요. 서울은 이제 제 마음속에 아주 특별한 곳으로 자리 잡았어요. 그래서 최대한 자주 오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