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같은 갈색이 아니에요, 지금 가장 핫한 위스키 핵심 키워드 8
한 모금으로 살펴보는 위스키 핵심 키워드.
로얄 브라클라 18년, 21년
“1812년,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에 위치한 코우더 에스테이트의 비옥한 토지에서 탄생한 싱글 몰트위스키 브랜드.” 국내 공식 론칭한 로얄 브라클라가 호적 읊듯 지리 정보를 공표하는 이유는 위스키에서 그것은 곧 지문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먼저 싱글 몰트란 싹을 틔운 보리인 맥아(Malt, 몰트)를 단일 증류소에서 만드는 위스키를 말한다. 위스키는 와인처럼 땅의 성질을 뜻하는 테루아 Terroir의 개념보다는 생산 장소를 더 중시하는데, 숙성 과정에 기후가 영향을 미친다고 여겨서다.(숙성용 나무 술통인 캐스크 Cask에서 숙성하기에 기후마저 크게 관계없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가령 지역 환경상 나무가 부족해 땔감으로 이탄(피트)을 사용한 아일러의 위스키는 특유의 훈연 향이 특징이고, 바닷가 근처 증류소가 품은 신선한 짠맛과 향을 설명하는 ‘해안 영향 Coastal Influences’이란 용어도 있다. 여러 산지 중에서도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와 스페이사이드는 위스키의 본고장으로 꼽힌다. 협곡, 강, 평야, 바다 같은 지형이 골고루 발달해 풍미가 섬세하고 풍요롭다. 한편 로얄 브라클라는 12년, 18년, 21년 총 3종을 선보이고 있는데, 혹시 숙성 연수가 높을수록 좋은 것일까? 그 답은 더 글렌 그란트 25년과 함께 짚어보겠다.
더 글렌 그란트 25년
“한국에는 위스키에 대한 편견이 크게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색이 진할수록, 간장 같을수록 귀하다. 또 하나는 버번 캐스크는 귀하지 않다. 하지만 그렇지 않거든요.” 한 위스키 관계자가 오해를 지긋이 누르듯 덤덤하게 이야기를 전한다. 실제로 위스키 전문가 한스 오프링가는 “숙성 연수가 높은 위스키가 낮은 위스키보다 더 좋을까?”라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반드시 더 좋은 것은 아니다. 오크통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낸 위스키는 떫은 뒷맛이 나거나 반면에 충분히 숙성되지 않으면 거칠고 독한 맛이 남아 풍미의 균형이 깨지기 쉽다.” 일례로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의 싱글 몰트위스키인 더 글렌 그란트 25년은 밝은 황금빛이다. 로얄 브라클라 18년은 보다 맑은 금빛이고, 같은 제품 21년은 고혹적으로 붉다. 로얄 브라클라는 셰리 캐스크에서 숙성을 마무리했고, 더 글렌 그란트 25년은 셰리 캐스크와 버번 배럴에서 숙성한 원액을 블렌딩해 다층적인 풍미를 전한다. 중요한 것은 그 숙성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다.
레드브레스트 15년
위스키의 어원은 ‘우시커 베하 Uisge Beatha’, 스코틀랜드 게일어로 ‘생명의 물’이라는 의미다. 1908년 영국 왕립 위스키 위원회는 “으깬 곡물에서 얻는 증류주이며 ··· 스코틀랜드에서 증류되면 스카치 위스키, 아일랜드에서 증류되면 아이리시 위스키”라는 말로 위스키에 대한 법적 정의를 내렸다. 이 정의 따라 레드브레스트는 아이리시 위스키다. 그것도 아일랜드 전통 방식 그대로, 발아되지 않은 생보리(녹색 풋보리라고도 한다)와 발아된 보리인 몰트를 혼합해서 구리 단식 증류기에서 세 번 증류해서 만든다. 이를 싱글 포트 스틸 위스키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아일랜드 전통 증류 방법은 마니아층이 확실할 만큼 입 안 가득 퍼지는 매끈한 질감과 풋보리 향을 남긴다.
기원 배치 6 페드로 히메네즈
스코틀랜드에서 온 44년 경력의 마스터 디스틸러&블렌더와 한국인 직원들, 재미교포 창립자가 “한국 최초의 싱글 몰트위스키”를 빚고 있는 증류소가 경기도 남양주에 있다. 2020년에 설립해 2021년 9월 국내 첫 싱글 몰트위스키인 ‘기원’을 출시한 쓰리소사이어티스의 약력을 살펴보다 보면 흥미로운 시점이 채인다. “2023년 6월 – 전 세계에 위스키로 부를 수 있는 3년 이상 숙성.” 실제로 1차 세계 대전으로 여러 어려움에 처했던 1915년 당시 영국 신임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는 “그중 가장 위험한 적은 술”이라며, 술 생산을 늦추기 위해 3년 이하 미숙성 증류주 판매 금지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강제로 3년 동안 오크통에서 숙성된 위스키는 도리어 풍미가 더 좋아져 데이비드가 머쓱하게도 위스키 산업은 더 부흥했고, 미국은 2년 숙성이 허용되는 등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나 3년은 숙성해야 진정한 위스키라는 관념이 뿌리내렸다. 기원도 어느덧 4천여 개의 캐스크에서 싱글 몰트들을 숙성 중이고 위스키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도 지났다. 이번 신제품은 스페인 화이트 품종인 페드로 히메네즈 와인을 만든 셰리 캐스크에서 숙성시켰다. 가을을 맞아 몸이 따뜻해지는 달콤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 무색하지 않게 그 맛이 제법 농후하다.
엔젤스 엔비
위스키 소개에 꼭 나오는 단어, 캐스크. 예를 들어 엔젤스 엔비의 경우는 이러하다. “엔젤스 엔비는 포르투갈 두오로 지역의 엄선된 루비 포트 캐스크에서 6개월의 피니시 숙성을 거친다.” 숙성을 위해 담아두는 나무 술통을 뜻하는 캐스크는 참나무인 오크 Oak가 선호되어 오크통이라고도 불린다. 루비 포트는 포르투갈 포트 와인의 기본으로 붉은 루비색에 검붉은 과일 맛과 타닌감이 특징이고, 루비 포트 캐스크란 이러한 루비 포트 와인을 만들고자 담아두었던 오크통을 말한다. 셰리 캐스크는 셰리 와인을 원산지인 스페인에서 영국으로 운송할 때 담아 쓰던 통, 버번 캐스크는 버번위스키를 숙성시킨 통이다. 캐스크에 보다 깊이 들어가면 오크도 아메리칸 오크와 유러피언 오크로 나뉘고, 셰리 와인을 몇 번 담았던 통인가, 크키가 큰가 작은가로도 나뉘지만, 우선 이 점만 기억해두면 쉽다. 위스키는 반드시 나무 캐스크에서 숙성해야 한다고 할 만큼 캐스크는 위스키 맛을 빚는 데 큰 역할을 하기에, 캐스크 앞에 어떤 이름들이 붙었는지 그 줄기를 좇아보면 풍미의 결이 그려지는 재미가 있다. 더불어 엔젤스 엔비가 꼭 거친다고 자부하는 피니시 숙성은 위스키에 복합적인 맛을 더하고자 다른 캐스크에 옮겨 담아 한 번 더 숙성하는 과정으로, 즉 버번위스키인 엔젤스 엔비는 마무리로 루비 포트 캐스크에서 한 번 더 숙성을 거쳤다고 이해할 수 있다.
메이커스 마크 셀러 에이지드
메이커스 마크가 최초로 출시한 고숙성 버번위스키다. 버번위스키란 무엇인가? 맥아 Malt로 만든 것은 몰트 위스키, 호밀 Rye로 빚은 것은 라이 위스키, 버번 Bourbon은 옥수수로 만든 위스키다. 옥수수로 만들었는데 왜 버번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석회가 풍부한 토양이라 옥수수가 잘 자라는 미국 켄터키주 버번 카운티에서 옥수수를 넣은 위스키를 많이 생산했고, 그것을 유통할 때 생산지로서 ‘Bourbon’이라 적어 그러하다는 구전이 있다. 메이커스 마크의 증류소도 미국 켄터키주에 있으며 버번위스키를 대표한다. 버번위스키는 최소 2년의 숙성 과정을 거치면 되고, 켄터키 지역은 계절별 온도 차가 높고 습해 숙성 연수가 높은 버번위스키를 만들기가 까다로운데, 이번 메이커스 마크 셀러 에이지드는 “고숙성”이다. 6년 숙성한 위스키를 켄터키 지역의 뜨거운 태양열을 차단하고 사계절 내내 10도 정도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석회 저장고를 만들어 5~6년 추가 숙성시켜 완성했다. 버번위스키로서 고숙성을 강조할 만한 시간을 거쳤다.
조니워커 블루 일루시브 우마미
증류소 한 곳의 단식 증류기에서 맥아로 만든 위스키가 싱글 몰트위스키라면, 블렌디드 위스키는 다양한 증류소나 여러 숙성 위스키로 만든다. 같은 재료라도 배합에 따라 요리의 향방이 달라지듯 블렌디드 위스키 역시 각 브랜드와 블렌더의 레시피에 따라 다채로운 맛과 향을 낸다. 블렌디드 위스키를 대표하는 조니워커의 이번 에디션은 마스터 블렌더 엠마 워커와 미쉐린 3스타 셰프 코바야시 케이의 협업 결과다. 일본어로 감칠맛을 뜻하는 우마미를 구현하기 위해 약 1천만 개의 숙성 캐스크에서 원액을 선별해 블렌딩했다. “블러드 오렌지, 레드 베리, 우드 스파이스, 훈제 고기, 소금 후추 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달콤한 과일 피니시로 끝을 맺는다”고 기록해둔 이들의 테이스팅 노트는 마치 레스토랑 코스 요리를 음미하는 미식가의 별점 같기도 한데, 실제로 우마미를 한 모금 머금고 있으면 피고 지는 각기 다른 색채의 향미가 재밌어 볼 안의 위스키를 자꾸만 굴리게 된다.
짐빔 하이볼 진저
위스키에 탄산수나 토닉 워터, 얼음을 넣은 것만 하이볼로 부르나 싶지만 아니다. 하이볼 Highball은 주로 칵테일에 사용하는 긴 잔의 이름이자, 이 잔에 위스키나 브랜디에 탄산수나 다른 음료를 넣고 얼음을 띄워 만들던 칵테일 이름이다. 폭을 넓혀 어떤 증류주이든 얼음과 탄산수를 더한 칵테일을 통틀어 하이볼이라고 부른다. 미국 버번위스키 짐빔과 일본 블렌디드 위스키 가쿠빈은 지금의 ‘위스키+탄산+얼음’ 조합 하이볼 이미지를 만든 대표 브랜드다. 위스키를 청량하고 가볍게 즐기는 방법을 대중적으로 각인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짐빔 하이볼은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하이볼을 즐길 수 있도록 캔으로 구현한 레디 투 드링크 Ready to Drink로, 지난해 레몬과 자몽 맛에 이어 새롭게 진저 맛을 선보인다. 그러나 ‘칵테일’이 기원인 만큼 하이볼의 진정한 재미는 자유로이 섞어보는 것. 시원하고 긴 잔에 가득 따르고 얼그레이 티백이든 레몬 조각이든, 하물며 <취할 준비> 저자이자 우리술 전문 박준하 기자가 알려준 대로 하드를 푹 찔러 봐도 재밌겠다. “증류주에 죠스바를 넣어도 맛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