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지지 않는 희망, 러시아의 초능력자 검증법
라텍스 장갑을 낀 남자가 유명인 사진을 조심스럽게 늘어놓는다. 두꺼운 하얀 종이로 사진을 각각 덮은 후 그 위를 손전등으로 비추면서 사진이 종이를 뚫고 비치지 않는지 살펴본다. 남자 옆에 선 젊은 여성이 사진 사이 간격을 자로 잰다. 버락 오바마, 아돌프 히틀러, 세계 최초 우주인 유리 가가린의 사진이 종이와 30cm 이상 떨어지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이게 뭐하는 걸까. 잠깐 다른 설명부터 시작해보자.
2년 전 모스크바에서 미국의 유명 마술사를 기념한 ‘개리 후우디니 독립상'이 제정되었다. 이 상은 신비한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초능력을 증명하는 사람에게 주며 1백 만 루블(2023만 원)의 상금이 걸려 있다. 수상자는 아직 없다. 우리는 이날 수상에 도전하는 한 여성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실험 준비. 사진제공: 빅토리야 랴비코바
“탁자와 사진을 건드리지 마세요! 아우라를 깨뜨립니다!” '개리 후우디니 독립상' 조직위원회 미하일 리딘 위원이 주의를 준다. 유명한 마술사 후우디니의 얼굴이 박힌 티셔츠를 입고 선 그는 얕잡아 보는 느낌이 역력한 눈길로 모든 것을 보고 있다.
그는 이번이 올가 옐차니노바의 초능력 검증을 위한 두 번째 도전이라고 말한다. 첫 번째 도전은 2016년 12월에 있었다. 올가와 다른 초능력자 두 사람이 시험에 떨어졌지만, 작은 실수는 허용한다는 규정 덕에 이번에 재도전하게 되었다.
왜 마법을 믿나
가리 구디니 상은 러시아에서 확산되는 신비적 경향을 극히 일부만 보여주는 예에 지나지 않는다. 러시아여론조사센터에 따르면 러시아인 36%가 마법을 믿는다. 45~59세 연령층이 그중 대다수를 차지한다. 나탈리야 키셀니코바 심리학 박사는 이 경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은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설명해주는 무언가를 항상 찾으려 했다. 옛 선인들은 물리학과 생물학의 기초를 몰랐기에 신의 개입을 믿기 시작했다.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도 있고 초능력에 관심을 갖게 되는 사람도 있다. 인간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삶의 길잡이가 돼줄 지식이나 초능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고 싶어 한다.”
사진제공: 빅토리야 랴비코바.
키셀니코바 박사는 이 현상이 낮은 교육 수준과 안정되지 않은 생활과 연관돼 있다고 한다. 그는 “목표를 상실했거나 닥쳐올 미래가 두려울 때 사람들은 예언가나 점집을 찾는다.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개리 후우디니 상은 이 수요를 충족시키는 방법의 하나다. 대회에 출전하려면 출전자의 초능력을 다룬 기사, 학자가 초능력을 확인해준 사실, 또는 동영상 촬영분을 주최 측에 제출해야 한다. 제출된 신청서를 조직위원회가 검토한 후 초능력을 검증할 자리를 마련하여 시험을 치르게 한다. 이날 도전한 초능력자의 과제는 40분 만에 종이로 가린 탁자위 사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맞히는 것이다.
조직위원회 스타니슬라브 니콜스키 위원이 “무슨 사진을 탁자에 놓을 건지 도전자와 우리가 함께 미리 정했습니다” 라고 공표한다. 사진은 함께 정했지만 놓는 순서는 주최측이 정했다. 올가는 종이를 꿰뚫고 순서에 따라 누구의 사진인지를 알아내면 된다.
관객 중 한 여성이 “그럼 공정한 시험이라고 할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
“초능력자가 유명인 사진 하나를 알아맞히는 확률이 12분의 1입니다. 결과가 유효하다고 인정받으려면 12장 중에서 6장을 제대로 알아맞혀야 해요. 그렇게 되려면 정말로 기적이 필요합니다. 도전자 여성에게 성공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라도 심어줍시다.”
결과가 드러나는 시간
사진제공: 빅토리야 랴비코바
러시아에서 초능력과 마법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여성이 월등히 많다. 러시아여론조사센터의 조사자료에 의하면, 여성 응답자의 42%, 남성 응답자는 29%만이 초능력을 믿는다. 나탈리야 키셀니코바 심리학 박사는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이 흔한 생각하듯 ‘여성의 본성' 때문은 절대 아니라고 한다. 그는 “사회적 요인과 성 역할의 고정관념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여자아이들을 양육할 때 그들이 합리적 사고를 발달시키려는 노력이 적고, 과학적 사고 성향을 확장하는 동기부여도 적다”고 Russia포커스에 설명한다.
후우디니 상 대회가 진행되는 메인 홀에는 조직위원회 대표, 독립 전문가, 대회 운영자가 들어가 있다. 나머지 사람들은 커튼 뒤에서 몰래 볼 수만 있다. 도전자 올가가 종이 아래 뒤집힌 상태로 놓인 사진 위로 슬며시 손을 움직이면서, 수첩에 뭔가를 기재하고, 골똘히 집중한 표정으로 동일한 행동을 반복하다 다음 사진으로 자리를 옮긴다.
러시아식 서비스 – '침대 데워주는 여자', '시간제 고양이', '꽃다발 대여'
적막을 깨는 것은 카메라 셔터 소리와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갈색 머리 여성이 “알아맞힐지도 모르잖아!”라고 옆사람과 들릴락 말락 속닥거리는 소리뿐이다.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1차 도전 때와 마찬가지로 올가가 알아맞힌 사진은 1장뿐이다. 올가는 “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결과가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초능력은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 우연히 발현된다. 언젠가 휴가를 갔을 때 비행기가 추락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실제로 추락했다! 그래도 초능력을 일부러 입증하려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머뭇거리게 되고 그래서 참담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내가 엄청난 투시력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단지 내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패배를 인정한다”고 설명한다.
조직위원장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란 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가리 구디니 상을 제정하진 않았다”고 강조한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것은 오늘 이 능력을 공개리에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지금까지 치러진 다섯 차례 시험에 출전한 초능력자 열다섯 명처럼 말이다.
사진제공: 빅토리야 랴비코바
스타니스랍 니콜스키 위원은 “그렇다 해도 초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찾아내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야 한다.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아주 많다. 세상이라는 퍼즐의 한 조각을 맞춰가는 행위는 뭐가 됐든 복된 일이다. 우리가 그런 일을 한다. 만약 존재하는 어떤 현상이 과학적인 방법으로 입증된다면, 그것은 퍼즐 한 조각을 찾아냄으로써 더 큰 그림의 세상이 완성되는 일이고, 인간이 우주의 본질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일”이라고 말한다.
시험이 실패하자 “아, 그럴 줄 알았어!” 하며 한 여성 관객이 적잖이 실망한 어조로 내뱉는다. 그런 다음 초능력 소재였던 사진을 슬쩍 모아 핸드백에 집어 넣으면서 “집에 가서 내가 직접 해봐야지”하고 태연하게 한마디를 더 보탠다. 어쩌면 이 여성 관객이 바로 그 현상일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이 관객이 보태는 퍼즐 한 조각 덕에 세상이라는 그림은 더 커지고, 초능력이 있다는 게 드러난다면 그 여성 지갑이 두둑해질지.